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열 Jan 31. 2022

스리랑카 팔색조 바다 이야기

실론섬 그리고 지중해


바다는 설레임이고 심장의 거센 박동이며 언제나 변함없이 다가오는 뜨거운 감동이다.


푸르른 수평선은 세상의 모든 바다가 같은 듯 비슷해 보이지만, 달콤한 코코넛 향기가 콧가를 스치며 배낭여행 길 여독의 피로를 풀어주던 지중해 니스의 바다, 야자수가 줄지어선 해변가에 따사롭고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온몸을 감싸던 출장 길서 만난 인도양 실론섬의 어느 바다, 검푸른 바다 길 끝 비취 블루의 감동이 펼쳐진 신혼 여행길에서 마주한 호주의 대산호초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바다, 카프리의 푸른 동굴에서 보았던 코발트블루 속 골드빛 물방울 천지의 바다. 바다는 닮은 듯하면서도 팔색조처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의 뇌리 속에 새겨져 있다.


바다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다 간직하고 있을 텐데 그 로망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다와 같이 넓고 큰 존재에 대한 경외심 일까 아니면 하늘과 마주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이 트이고 마음의 평화가 오기에 바다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항상 보는 것이 바다라면 그래도 그 로망을 지금처럼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바다에 대한 깊은 로망은 보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없기에 생겨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선산이 있는 지금은 변산 해상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그곳에 친척들과 갈 일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바다를 만난다는 기대에 잠을 설치곤 하였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된 좁은 국도를 가다 가다 지칠 즈음 저 멀리 차창 너머로 하얀 포말을 쏟아내는 파도가 넘실대는 게 보이기 시작하면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야! 바다다’ 하며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선명하다.


고교시절 수학여행에서 처음 만난 바닷속까지 보이던 맑고 푸른 동해바다는 환상 그 자체였다. 동해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바다라는 선생님의 말에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밖으로 여행할 기회가 빈번해지면서 우리의 동해 못지않은 아름다운 바다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바다를 만나왔기에 바다에 대한 로망이 사라질 만도 하건만 만나면 설레고 떠나면 또다시 그리워지는 바다에 대한 로망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달력이나 화보 사진에서나 봄직한 실론섬의 열대 바다


인도양의 보석으로 불리는 실론섬 스리랑카의 바다는 달력이나 화보 사진에서나 봄직한 대표적인 열대의 바다다. 해변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야자수 나무들을 배경으로 석양이 드리워져 온 세상이 붉은빛으로 스며들고 낮 동안 달구어진 뜨거운 열기가 조금씩 시들 즈음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을 맞는 느낌은 스리랑카의 바다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환상적인 경험이다.


그 바다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출장차 들른 브루나이에서 사업 파트너가 다음 여정을 묻기에 스리랑카를 간다고 하였더니 반색을 하며 얼마 전 자기도 휴가로 그곳에 다녀왔는데 히카두와 <Hikkaduwa>라는 곳이 정말 멋지다며 꼭 가보라고 하였다.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스리랑카로 들어오는 하늘 길은 밤새 지독한 난기류에 휩쓸려 비몽사몽간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공항에 도착하니 냉방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지 열대 지방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지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느긋해 보였다. 환전을 위해 달러를 내밀으니 몇 번을 살펴보더니 스리랑카 화폐로 바꾸어 주는 손길도 느리고 공항 바닥을 걸레질하는 청소부의 손길도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하였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를 들어가는 거리 풍경은 퇴색한 건물로 넘쳤다. 마치 70년대 어린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듯하였다. 시내에 접어들자 식민지 시절의 영국 빅토리아풍 건물과 인도양식의 건물들이 혼재된 게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거리의 한 장면처럼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2일간 예정된 미팅 일정을 하루 만에 처리하고 그날 저녁 히카두와 <Hikkaduwa>로 향했다. 차선도 없는 2차선 비포장 도로에서 운전기사는 전속력으로 액셀을 밟아대고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겨우 십여 미터 앞에서야 차를 피하곤 해서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천장 손잡이를 잡고 팔다리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두 시간 뒤 목적지인 히카두와 <Hikkaduwa>의 한적한 해변가 호텔에 당도하니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팔다리가 뻐근하였다.  


다음날 아침 창밖을 열어보니 잔잔한 파도소리와 함께 후끈한 공기가 아침부터 불어오고 해변을 따라 야자수들이 끝없이 이어져 이곳이 적도 근방에 위치한 열대 바다임을 말하고 있었다. 호텔 바로 앞,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에서 썬베드에 누워있으니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귓가를 즐겁게 하였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따스한 바람이 온몸을 마사지하듯 기분 좋은 감촉이 느껴졌다. 좀 덥다 싶으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몸을 식히고 놀다 지쳐 시장기를 느끼면 수변 카페테리아에서 바비큐로 구워진 꼬치와 함께 한잔의 맥주를 즐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졸고 있었는데 호텔 밖에서 나를 향해 요란하게 호객하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보니 이곳이 산호초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며 날 유혹하였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비용이 얼마냐 물으니 오전 오후 각각 2시간에 20불인데 온종일 즐긴다면 10불을 깎아 30불에 해 주겠다고 하였다. 잘못 들었다 싶어 다시금 물으니 20불이 맞다고 하였다. 가격이 너무 싼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이곳이 물가가 싸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배들이 정박한 바닷가로 이동해 모터보트에 올랐다. 십여분 바다를 향해 나가더니 스노클링 장비를 주면서 바닥도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다에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하였다. 순간 덜컥 겁이나 이러다 스리랑카까지 와서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용기를 내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몸이 계속 가라앉기에 허우적 대다가 짜디짠 바닷물을 엄청 들이킨 후에야 겨우 배에 올라설 수 있었다. 스노클링을 포기하려 하자 서핑보드를 건네며 다시 해보라고 권유해 다시 바다에 뛰어 들어가 보드 중앙에 배를 대고 누우니 그제야 스노클링 자세가 나왔다. 수경으로 바닷속을 들여다보니 시야는 약간은 탁해 보였지만 바닥엔 만추의 산을 바다로 옮겨 놓은 듯 울긋불긋 현란한 모양의 산호초들이 끝도 없이 바다에 깔려 있었다.



 예전에 필리핀 세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면서 산호초 군락이 듬성듬성해서 실망스러웠는데 이곳의 바다는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등 원색의 무성한 산호초 군락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아름다운 열대어들로 가득 찼다. 무아지경으로 바닷속을 누비다 보니 어느덧 오전 시간이 지나가 오후에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약속한 20불을 건네줬다.


호텔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요기를 하고 썬베드에 누워있으니 배도 부르고 몸도 적당히 노곤해서 잠이 스르륵 들었는데 오전에 만났던 스리랑카 친구들이 오후에 스노클링 하러 가자며 불러댔다. 힘이 들어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싶다고 하자 이미 장비 비용을 지불했다며 나머지 10불을 요청해 잔금을 건네주자 불로소득의 횡재에 신이 났는지 연신 땡큐를 내뱉으며 자리를 떠났다. 오후 내내 썬베드에서 누워 딩굴거리다 지겨워지면 수영장에 들어가 놀고 배가 고프면 먹고 마시길 반복하며 뜻밖의 멋진 휴가를 즐겼다. 이글거리는 열대의 태양의 열기에 거리에는 인적 하나도 보기가 힘들었다. 그 열기가 꺾일 즈음 바닷가로 나와 거닐다 보니 찰랑대는 파도에 드러난 모래사장에 성게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신기하였다. 호텔에서 나와 기념품이라도 살 요량으로 가게들을 기웃거리다 가격을 물어보니 수작업으로 공들여 만든 빨강 파랑의 원색 나무 공예품들이 우리 돈으로 이삼천 원 안팎이고 푸짐하게 차려진 해산물도 오천 원 정도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스리랑카가 아직은 낯설지만 유럽인들 특히 독일인들이 최고로 선망하는 여행지중 하나인 것은 천혜의 열대 자연의 정취를 즐기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값싼 물가도 한몫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보상에도 최선을 다하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남방 아시아 사람들 특유의 선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저녁 콜롬보로 돌아오는 길에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너무나 가까워서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어른거리며 황홀한 일몰을 연출하고 바닷속으로 잠긴 뒤에도 한동안 황금빛 여운은 계속되었다. 바다 반대편 길가에는 원시 밀림이 펼쳐지고 종종이 보이는 엄청난 수량의 강물이 밀림 사이로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짧지만 강렬했기에 왜 스리랑카를 인도양의 보석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열과 쉼이 있는 바다

지중해의 니스 해변


쉼이란 런 것인가?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반라 군상속 하나가 되지 않아도..

푸른 바다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해변에 늘어선 비치 카페에서 썬 베드와 파라솔을 하나 빌려 몸을 뉘인 채 푸르디푸른 지중해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비치 카페에선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이 귓가를 기분 좋게 하고 눈을 감은채 거친 파도 소리의 합창을 즐기며 반나절을 소요하는 이맛..  

아이스커피의 카페인에 취한 채...

우리의 해운대에서도 이런 분위기와 맛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시절 친구와 둘이서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파리를 거쳐 이탈리아로 들어가기 전 세계적인 휴양지로 소문난 니스 <Nice>의 해변이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해 잠깐 들린 게 첫 만남이었다. 배낭을 짊어진 채 역사를 빠져나오니 바람결에 달콤한 코코넛 향내가 콧가를 스쳐 지나가고 거리에 일렬로 들어선 야자수들을 보니 흡사 열대지방의 휴양지에 온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양쪽 시야가 미치지 못할 정도의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을 따라 늘어선 세련되고 기품 있는 건축물들이 지중해의 짙푸른 바다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해변이 모래 대신 자갈이 깔린 것이 이채로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름의 막바지임에도 지중해의 햇살은 강했지만 니스의 청춘들은 태양을 향해 몸을 맡기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은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고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토플리스 차림으로 상반신을 드러낸 모습을 보노나니 니스의 해변이 젊음의 해방구처럼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기차를 타기 위해 자리를 떠야만 하는 발길이 무거웠다.


몇해전 출장차 이탈리아에 들렸다가 그때의 아쉬운 기억을 달래기 위해 자동차를 렌트하여 니스로 향했는데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대에 고속도로가 위치해 바다는 아스라이 보였지만 지중해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모나코에 들어서니 수백 미터 절벽 아래로 에메날드과 코발트 블루가 혼재된 지중해의 바다에는 요트들이 여유롭게 떠다니고 길을 따라 가로수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원색의 보라색 주황색 흰색 꽃들이 만발하고 주황색 지붕이 펼쳐진 지중해풍 아름다운 집들이 펼쳐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시국가인 모나코가 좁은 땅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인지 길을 따라 빽빽하게 늘어선 고층빌딩들도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해안을 따라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모나코에서 삼십여분을 달리니 니스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자 가슴에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