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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Apr 22. 2024

싱잉볼을 종(鐘)처럼

Singing bowl과 The evening bell

   

종지기 1 ‘종지기이자 등대지기’ 조정형     


경향신문의 2019년 10월 20일 자의 ‘100년 성당서 50년간 종을 친 마지막 종지기’라는 기사 내용 요약이다.     

 【100년 된 성당에서 50년 동안 종을 쳤다. 대전 대흥동성당의 ‘마지막 종지기’ 조정형 씨(73)의 이야기다. 조 씨는 지난달 22일 종을 친 것을 끝으로 종탑에서 내려왔다. 그가 성당에서 종을 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10월.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성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하루에 3번 종을 쳤다. 오전 6시, 정오, 오후 7시 어김없이 종탑에 올라 종을 쳤다. 그가 매번 종을 치는 시간은 1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20분 전쯤부터 종 칠 준비를 했다. 120개 계단을 따라 종탑에 올라간 그가 맨 처음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것이었다. 시계에 의존하다가 갑작스러운 고장 등으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50년간 성당의 종소리를 책임지면서 그는 개인생활을 포기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본 기억도 없다. 하지만 그는 “6층 높이의 종탑을 매일 올라 다닌 덕분에 몸은 건강합니다. 이제 종을 치지는 않지만, 성당과 종을 지켜가고 싶은 마음은 예전과 똑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종지기이자 등대지기”였다고 그를 회상한다.】     


종지기 2 ‘성자가 된 종지기’ 권정생     


국민일보 2010년 9월 8일 자 ‘종지기 권정생 선생의 안동 일직교회’라는 기사 요약이다.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일직교회에서 종지기 삶으로 생을 마쳤던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을 낸 한국 문단의 대표적 아동문학가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불리기 원했던 호칭은 ‘종지기 권정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1967년부터 16년간 일직교회 종지기로 살며 조탑마을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종지기로서 매일 새벽 4시와 오후 6시 종을 치는 영광을 소홀히 하기 싫어서였다. 그는 지독한 가난이 가져다준 질병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키가 170㎝인데도 몸무게가 37㎏을 넘어본 적이 없었으며, 여기에 신장을 절개하는 수술 등으로 소변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했으니, 그의 신체적 고통이 어떠했겠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는 한겨울에도 진실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며 장갑 낀 손으로는 종을 치지 않았다고 한다. 권정생은 차임벨이 보급되던 83년부터 서는 종을 치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은 그를 “성자가 된 종지기”로 불렀다고 한다. “비료 포대로 부채를 만들어 쓰고 월 5만 원으로 생활”한 그는 사후 재산을 정리하니 90여 편의 작품에서 들어오는 연 인세 1억 원과 10억 원 자산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이 유산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굶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고 한다.】  

    

5월 하순의 경북 안동 맹개 마을과 봉정암, 청량사 등 여정에 권정생의 종이 있는 일직교회에 들를 틈이 생길는지 모르겠다.     


저녁 종소리     


 아일랜드 태생의 토마스 무어가 19세기 초에 쓴 시를 바탕으로 역시 아일랜드 출신 가수인 쉴라 라이언이 부른 The evening bell이 오늘따라 내가 치는 싱잉 볼 소리의 여운이 된다.   

   

"저녁 종소리, 저녁 종소리, 너희는 알려야 할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전했니? 젊음을, 집을, 그 아름다운 시간을, 내가 마지막 너희 달래주는 종소리 들었을 때. / 그 종소리 사라진 아름다웠던 지난 날들, 그때는 많은 마음들이 즐거워했지. 지금은 어둠의 무덤 속에서 지내기에 더 이상 저녁 종소리 들을 수 없네. / 그러니 내가 떠나도 그리될 텐데, 선율이 아름다운 소리 계속 울리리. 또 다른 시인들이 이 종소리와 함께 걸을 테니. 너희 아름다운 찬양 저녁 종소리를 울려다오. / 저녁 종소리, 저녁 종소리, 너희는 알려야 할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전했니? 젊음을, 집을, 그 아름다운 시간을, 내가 마지막 너희 달래주는 종소리 들었을 때."(저녁 종, 토마스 무어의 시, 쉴라 라이언의 노래)               


지난 1월 8일에 거제도 외포리에서 싱잉 볼을 샀다. '노래하는 사발(singing bowl)'인 이 종으로 격식을 갖춘 명상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울림이 좋아, 그 소리의 울림이 내 마음과 이루는 공명이 좋아서 가제보 데크 탁자에 놓고는, 그 앞을 오가는 중에 치고 긁어 소리 만들어 잠시 서서 여운에 잠기려는 거다. 하루에 3회는 기본으로 치고, 눈 뜨고 밖에 나오자마자 1회, 하루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1회 등, 1일 5회 타종을 원칙으로 하는데, 기본 3회 타종은 거의 빠지지 않지만 나머지 2회는 자주 까먹는다.    

 

한 달여 전에는 묵직한 절구공이를 샀다. 이것으로 때리니 타격감은 더 묵직해지고 울리는 소리는 더 둔탁하면서 공명이 깊다. 어디 그뿐인가. 이 절구공이로 싱잉볼도 때리고 스트레칭 후 목과 등, 종아리와 발바닥 손바닥 등등을 탁탁 치는 마사지 봉으로도 쓰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그런데 저 두 분은 남을 위해 종을 쳤다. 그런데 나는 나를 위해 싱잉 볼을 친다. 하지만 ‘종지기이자 등대지기’인 조정형 님이나 ‘성자가 된 종지기’인 권정생 님을 가끔 생각하면서 오늘도 ‘노래하는 사발’을 절구공이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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