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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후 며칠 동안 FOX 채널의 오전 9시 무렵 시간대는 ‘세상에 이런 일이’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었다. 이미 방영된 회차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만 골라 다시 보여주는 듯했다.
추석 다음 날, 무심코 리모컨을 눌러가며 채널을 넘기다가 익숙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바위였다. 순간 마음이 철렁해 되돌려 보니, 그 바위가 바로 우리 바위, 내 바위 ‘숙진암’이었다. 지금은 우리 밭이 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바로 그 바위였다.
프로그램은 1998년 7월 31일 지리산 대폭우 당시 악양면 동매리 뒷산에서 굴러 내려온 큰 바위가 지금의 위치에서 멈춰 서며 물길을 갈라 동네를 참사에서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다뤘던 SBS 취재물이었다. 이장과 당시 바위가 있던 밭의 주인 등 마을 주민들이 차례로 등장해, 본래 자리에서의 바위 역할과 폭우의 위력, 그리고 바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KBS와 MBC에서도 비슷한 취재가 있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마을회관 어딘가에 있을 테니 언젠가 꼭 보고 싶다고만 생각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런데 추석 연휴에 뜻밖에도 TV에서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숙진암’이라는 이름은 내가 붙였다. 바위와 맺은 인연이 내겐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그 내력을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고 나니, 더욱 정이 깊어진다. 그 바위의 굳건함과 묵묵함을 닮고 싶다는 마음도 한층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