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왕자 부크공주
주초에 박근혜 검찰 출두의 소식에 뉴스가 집중되더니, 주중에는 갑자기 세월호의 소식이 빅뉴스가 되었다.
'어! 이게 뭐지?'
라고 잠깐 생각했는데 거짓말처럼 세월호는 눈앞에 그 거대하고 초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허탈하다. 이게 이렇게도 쉽게 인양될 문제였다는 말인가?
바쁘다 무척이나 바쁘다. 요즈음은.... 그렇지만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동료들이 스크린 골프치러 가자고 한다. 화가 났다. 세월호 인양되는데 그럴 정신이 있는가? 죄인의 마음을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닌가?
<눈먼자들의 국가>
출판사 : 문학동네
저자 :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
주제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초판 : 2014년 10월 6일
걱정도 많았지만 조금 전 세월호는 반잠수정으로 옮겨졌고, 이제 목포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는 올라왔다.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나라의 어른들은 오로지 고속 성장과 돈으로 얼룩져 있고, 이 어쳐구니 없는 사건에 대해 죄를 묻는 데 꼬박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성한 곳이라고 한군데도 없는 나라... 그리고도 아직도 과거의 잘못된 이데올로기에서 허우적 거리는 20%의 국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피도 영혼도 없는 전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글을 엮은 책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숙연한 열정으로 써낸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에서 열두 명의 작가들은 그들의 충격을 엮었다. 작가들과 출판사가 인쇄를 포기해 5천원도 되지 않는 이 책은 세월호를 통해 그들이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같이 살아 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은 일본이 36년간 운항하던 배였고 우리가 자력으로 구입한 선박이 아니었다.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승전국이었던 미국는 군정을 통해 배의 평형수를 조절했고 배의 관리를 맏은 것은 예전부터 조타실과 기관실에서 일해온 선원들이었다. 평형수를 비우면 비울수록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증가했다. 적재와 적재와 적재와 적재...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배는 늘 통제되고 관리되어왔다. 2층 객실에서 3층 객실로, 이어 4층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언제나 좁고 미어터졌다. 붐비는 통로에서 우리는 늘 방송을 들었다. 잘 살아보자는 방송. 하면 된다는 방송이었다.'
저녁에 외식을 했다. 부들부들한 소갈비살을 뒤집을 때, 딸아이는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세월호의 과적처럼 쌓여있는 과제물에 오랜만에 집에 와도 맘을 늘 불편했던게다. 내년이면 대학 시험을 치루어야 하고, 딸아이는 빨리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녀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냥 어른들은 참으라는 말을 하고 있고 '가만히 인내하라!' 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다.
'발전과 번영은 종교가 되었고 배가 왜 이렇게 기울었지?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이란 이름의 이단으로 몰려야 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기울어야 했던 국민이다. 기울어지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 기울기는 안정적인 것이었다.'
잘 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늘 튀는 사람이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의 속담은 어김없이 현실이 되는 세상. 그래서 늘 양보하는 것은 바보이고 비판하는 사람은 불만으로 가득 찬 종북주의자가 되어 어느 덧 고립의 벽을 스스로 쌓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시체 팔이'가 되어 거리의 차가운 텐트에서 그리고 동거차도의 외로운 전망대에서 투사가 되어 진실을 주장하고 있을 때, 정부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특조위를 무산시키고 그냥 '가슴에 묻어 버리라'는 국회의원이 버젓이 대선후보로 등록하고 유세를 하는 그런 나라에서 나는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아깝다. 신용카드를 꺼내다가 현금으로 바꾸어서 음식값을 지불하고는 음식점 사장님의 탈세를 기원하고 거리로 나왔다.
'마치 이 배를 닮은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지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지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의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글거리는 버스에 탑승을 할 경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버스 앞쪽 문으로 달려든다. 가능한 양보를 하려 하다 보면 대부분 제일 늦게 탑승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바보같이 자기몫을 챙기지 못한다고 늘 나무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불편하다.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 치열한 성과 경쟁에서 낙오자가 된 나 자신을 합리화 해 본다. 그래서 난 이렇게 신화 같았던 회사에서 임원이 되지 못했다. 등 떠밀려서 3층 객실까지는 올라갔지만 4층 객실로 가지 못했고 곧 침몰하는 '노인 빈곤율 1위'의 대한민국호에서 해경의 구조선으로 올라타는 탈출구를 스스로 봉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도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다. 이 녹슬은 거대한 선박은 며칠 후 목포항에서 자신의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시뻘겋게 눈을 뜨고 있을 암세포를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무섭다. 차가운 메스가 내 배를 가르는 고통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악마처럼 잠들어 있는 우리들의 암세포들이 말기의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오늘도 TV에서는 노래를 못해서 한이 되어버린 국민들이, 요리를 못해서 한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게 요리 프로그램과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면서 TV 볼륨을 줄이고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아이의 정체 모를 학습에 행여나 방해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니 말이다. 우리 아이는 4층까지는 떠밀려도 좋으니 올라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부정하고 시퍼런 바닷물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프다. 아픈 한주일이 그렇게 지나고 있다.
아홉명의 영혼이 있을지도 모를 세월호는 지금 멀고도 먼 종착역인 목포항으로 떠난다. 마지막 별들이 되어 하늘로 가기전에 가족들과 뜨거운 포응이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중간중간 인용된 글은 본 도서의 12편의 글 중에서 박민규 작가의 '눈먼자들의 국가'에서 워드를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