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왕자 부크공주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도 황폐하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은 키보드를 잡아야 겠다는 사명감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런 날입니다.
영화 <데드맨 워킹>
개봉 : 1996년, 미국
감독 : 팀 로빈스
주연 : 수잔 서랜든, 숀 펜
매튜 폰스렛 (숀펜 분)은 데이트 중이던 두 연인을 강간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입니다. 어찌어찌한 연으로 헬렌 수녀 (수잔 서랜든 분)은 매튜로 부터 도움의 요청을 받아 그의 사형만은 면하게 하려고 백방의 노력은 기울이지만, TV에 잡힌 잔혹한 살해 장면과 거친 욕설을 퍼 붓는 기자회견의 모습은 피해자 가족들의 공분과 여론의 비판을 감당하지 못한채 결국 사형은 집행되게 됩니다. 사행 집행 6일전, 헬렌 수녀를 애타게 찾았던 매튜로 부터 사형장까지 함께 영적 안내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또 다시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죄를 완강하게 부인하는 그를 회개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 처럼 보였지만 그의 청을 수락하고 6일동안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인간의 잔인함을 잘 표현한 숀펜의 악마같은 연기력과 수잔 서랜든의 깊은 눈동자 연기는 영화가 주는 메세지를 유감없이 표현했고, 한밤에 혼자앉아 케이블로 보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피해자들이 느꼈을 면도날 자국처럼 깊은 상처를 절감하는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영화의 깊고 씁쓸한 여운에 피곤한데도 한두시간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형제도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악마의 얼굴을 보면서, 그리고 피해자들의 통한의 눈물을 보면서 제가 가진 신념이 확고한가 내내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터져버린 매튜의 눈물에 어떻게도 정리할 수 없는 인간 자체의 본질에 대한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는 한없이 무거워졌습니다.
'데드맨 워킹 (Dead Man Walking)', 우리말로는 '사형수 입장' 정도로 번역을 하는군요. 공지영의 원작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은 이 영화로부터 모티베이션을 받은 것 처럼 상상되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날카롭고 무거운 질문을 세심한 구성으로 연출한 '팀 로빈스'의 그것에 비교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것이 살인이든 사형수이든..."
사형수 매튜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했던 이 말은 얼핏보면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지만, 헬렌수녀의 눈에서 인간애에 대한 본연의 뜨거운 눈물이 솟아나는 명장면이었습니다.
금일 포토라인에 섰던 전직 대통령의 단 한마디는
'국민꼐 송구하고,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였습니다.
그 많은 기자들이 그리고 그 많은 국민들은 그녀의 입에서 나와야 할 그 어떤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말은 과거의 수많은 힘쎈 범죄자들이 하는, 그래서 코미디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 언어였습니다. 밤을 세워 기다린 수백명의 기자들과 수천만의 국민들은 또 다시 힘들었던 4년의 세월을 떠올리며 가슴이 메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가족들, 개성공단 사업자와 근로자들, 한진해운, 조선업 해고 근로자들,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들, 이화여대 학생들, 해직 언론인들, 4개월을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그들은 그녀에게서 극악한 살인자이자 기자들에게 폭행을 서슴지 않았던 '매튜 폰스렛'의 악마같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무너진 가슴을 피의자로 부터 죄를 뉘우치는 태도로부터 천의 하나라도 위안을 받고자 지금도 거리에서 천막에서 거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수많는 시민들의 가슴에 당당히 대못을 박고 입장했습니다.
사형제도는 없어야하고 인간의 생명은 만인 앞에서 보장받고 훼손될 수 없음에 대한 신념. 신은 또 다시 우리들의 의지를 시험대에 올려 놓고 시험하려는 것 같습니다. 다음달이면 올라오는 세월호의 선체 인양이 있을 것이고 기 그 길었던 3년의 깊고도 이팠던 진도 앞바다의 그자리에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입에서, 아니 그 부풀어 오는 두꺼운 얼굴에 조금이나 부끄러워 하는 낮빛이 올라오기를 기대합니다. 회려한 봄 벚꽃이 피기 전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