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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Mar 04. 2017

늙은 군인의 노래

두장의 타임라인

“뭐하면서 살고 싶니? 인권 변호사?”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또 목표가 확실하다면 그것을 이루려는 인내는 그리 쓰지 않겠거니 생각했고, 힘들게 공부하는 딸 아이 위한답시고 항상 그런 질문은 던지곤 다.

“싫어요!”

고교 입학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급조된 직업이자, 영화 ‘변호인’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만들어진 직업 ‘인권 변호사’는 아이 성격이 친구들과의 이견이 있어도 그냥 조금 참고 마는 그런 것이어서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국어교사는 어때? 네가 좋아하는 드라마 원작도 써보고 작가님 소리도 듣고……. 그래, 국문학보다는 국어교육학이 좋단다. 잘 안 되면 선생님 하면 되니까. 아빠가 전공한 공학은 세월이 지나면 기계처럼 녹슬지만, 국문학의 세월을 오래된 와인처럼 숙성된 품위가 더해지는 거란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 것도 내키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어느 틈에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이에게 하소연 하 듯이 강요를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것이었는데…….


83년 학력고사를 끝내고 선생님들은 교과가 끝나 시간들을 자습이나 잡담으로 때우고 있었는데, 당시에 과학선생님은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가 올 것이므로 컴퓨터 및 전자공학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몇 가지 컴퓨터 언어에 대한 내용을 정성스럽게 강의를 해 주신 기억이 난다. 나도 그런 IT산업의 열풍을 타고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했고 우리나라가 제일 좋아하는 기술노동자의 자질을 갖추고 난 후 어렵지 않게 일등회사의 몸을 담게 되었다.

26년의 세월이었다. 세계의 내놓으라고 하는 반도체 회사들은 치킨게임으로 그 엔진이 멈추는 동안에도 삼성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2002년부터 15년 연속 1위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고, 가속 페달을 더욱 힘차게 밟은 결과 올해는 비메모리 부문을 포함한 인텔의 통합 반도체 회사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달리고 달려서 피곤한 몸에 길가에 걸터앉아 잠깐을 졸았다. 그리고 어떤 꿈을 길게 꾸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긴 꿈, 그리고 짧은 망각 같은 것?’ 깨어났더니 회사는 거대 공룡이 되어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는 그런 유전(油田)이 되었고, 이 유전을 가지고 싶어하는 무역회사, 건설회사, 패션회사, 놀이동산 회사 들이 시너지를 만든다고 합병하더니 그 것도 대통령과 비선의 농단으로 뉴스의 핵심으로 연일 오르내린다.


메모리(memory) 반도체는 현재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시장이 구성 된다. 매우 빠르지만 금새 데이터를 소실하는 디램(DRAM)이 있는데, 이 소자는 리프레쉬(refresh) 라는 동작을 주기적으로 수행해서 그 메모리 세포의 데이터의 기억을 유지하게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낸드플래쉬(NAND Flash)로 별다른 전원의 공급이 없이도 데이터를 몇 년을 유지할 할 수 있고 소실 가능성도 작으나 디램과 달리 적당한 일반적인 전압으로는 쓰기 기능(write mode)를 수행하지 못하고 반도체로서는 고전압인 30V 정도의 전압을 사용하여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학교에서 방송에서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자주 돌아보고 기억하는 디램 메모리 인지, 아니면 30년에 한번씩 피와 분신과 촛불로 강한 상처를 동반해서 새로 쓰다시피 역사를 떠올리는 낸드플래시 메모리인지? 세월호 참사로 아픈 마음은 대한민국 모든 부모에게 똑같을 것이다. 30년의 짧은 잠에서 30V의 강한 충격으로 깨어나니 역사가 그 30년 전 대학시절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와 똑 같은 자리, 아니 어쩌면 더 뒷자리에 우리 아이들은 서있고 가난보다 더 큰 짐을 지고 기울어진 산길을 오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가난과 무지와 허탈함을 이야기 한다 해도 그들은 70년대 유신세대가 아니어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고 담궈 놓은 매실주가 잘 익었을 때, 삼겹살 구우며 오늘의 과거를 기억하겠지.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시 꺼내보고 싶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었던 2016년 대한민국.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어떤 평범한 엔지니어는 늙은 군인의 노래로 차곡차곡 적어 습작으로 일기를 썼다. 그리고 이 평범한 기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보기로 했다.


부크크 자가출판 시스템 - 백명이 만권을 만드는 것보다 만명이 백권을 만드는 사회, 수천명 대강당에서 강의 듣는 것보다 마을에서 삼삼오오 토론하는 사회가 좋다.
글을 쓰는 것만큼 자신을 더 잘 살피는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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