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왕자 부크공주
겨우내 켜놓았던 촛불은 승리했고, 전단지 속의 구속을 염원하던 인물들은 하나씩 곱표가 그려지면서 구속되고 있다. 최순실, 차은택, 김기춘, 이재용, 박근혜 그리고 오늘 우병우 전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감옥생활이 뉴스가 되고 뒷이야가기 전해진다. 원수같았던 적폐의 화신들은 이렇게 구속되고 있지만 답답하다. 몇몇의 사람들이 과연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고 생각되지 않고 그들을 구속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명색이 전직 국정최고지도자는 검찰과 법률상의 잘잘못을 꼼꼼히 따지기 이전에 그리고 화려한 그녀의 독방에 들어서기 이전에 그녀에게 표를 주었던 국민들에게 입장을 정확하게 표명을 했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강하게 비판하는 나 자신도 자유롭지 못함을 이 영화를 통해 먹먹하게 느끼게 되었다.
영화 : 문라이트 (Moonlight, 2016년)
장르 : 드라마, 미국
감독 : 배리 젠킨스
주연 : 마허샬라 알리 (후안), 나오미 해리스 (폴라), 알렉스 R. 히버트 (리틀, 어린샤이론), 에쉬튼 샌더스 (샤이론), 트래반트 로즈 (블랙, 어른샤이론)
엠마스톤의 미모와 화려한 음악으로 치장된 영화 '라라랜드'는 89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에 이어 <작품상>을 휩쓸어 가는가 했지만 불과 2분만에 봉투가 뒤바뀐 사고로 판명 나면서 최우수 작품상은 이 영화 '문라이트'에게 돌아갔다. 왜 항상 내가 보려 하는 영화는 이렇게 상영관이 적은 것일까 평일 저녁 어렵게 예약을 했고, 널럴한 극장에서 한적하게 작품을 감상했다. 나는 영상 이해력이 원래 떨어지는지라 미리 줄거리를 확인하고자 인터넷 검색을 해도 확실한 내용을 기재한 블로거는 없었다. 영화 다 보고 엔딩클래딧이 올라올 때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무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i. Little
어린꼬마 '샤이론'과 마약 딜러 '후안'의 만남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샤이론은 창고에 숨어있었고 후안은 그 창고 창문을 뜯고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마이애미의 가난한 흑인의 동네에 살고, 홀어머니는 마약에 중독되어 외간남자를 집에 끌어들이기 일쑤이고, 친구들은 그를 괴롭히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도 조금씩 주변으로 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어떻게 하면 그의 인생이 더 험악하게 출발할 수 있을까? 샤이론에게 아무런 관계도 아닌 (Nobody) 후안은 샤이론과의 인연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석이 가지 공포감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후안은 수영을 하는 법을 알려 준다. 이 장면에서의 카메라 앵글은 철저하게 샤이론이 수영을 하는 시각에서 촬영하여 그녀석이 느꼈을 법한 물에 대한 공포를 현실감 있게 전한다. 사실 나도 수영을 못한다. 캘리포니아 뜨거운 여름은 오월부터 시작이고 아파트의 수영장에서 아이들을 풀어놓고 나는 늘 따뜻한 스파에서만 몸을 담구고 있었다. 그래서 영상으로 들어오는 카메라가 전해주는 그 공포감은 전혀 남의 일은 아니었던 게다.
ii. Chiron
샤이론이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후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다. 마약쟁이 업마는 더욱 심각한 중독으로 아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아들의 주머니의 돈까지 갈취한다. 샤이론의 유일한 친구는 케빈이다. 어릴적에 샤이론에게 '너도 강한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샤이론을 '블랙'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샤이론은 어느날 해변에서 캐빈과의 성적 접촉을 하면서 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품게된다.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 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찬성을 했고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를 하지 않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이해를 해 보려하면 쉽지 않은 것 만은 확실하다. 나에게는 과연 '공감능력'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것일까? 어느날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친구는 캐빈을 사주하여 샤이론을 폭행하게 된다. 삶을 가늘게 지탱했던 친구인 캐빈에게 폭행을 당하고 비로소 뜨거운 그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는 거친 숨을 쉬고 어딘가로 향하는 그의 시각을 담았고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가 의자를 들어올려 폭력을 사주한 그 친구의 머리를 내리 찍는다. 그의 신병은 경찰에 인계되며 장면은 Fade-out된다.
iii. Black
후안을 연상하게 하는 검고 건장한 남성 또한 마약 딜러이고 수년이 지난 샤이론의 성체이다. 샤이론은 오랜시간 만나지 못했던 엄마에게 전화를 받는다. 요양병원에서 마약중독 치료를 받는 엄마로부터 사과를 받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깊은 상처에 대한 치료는 상처를 주었던 당사자의 진정성으로부터 의외로 쉽게 봉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한사람으로 부터의 전화, 그는 '케빈' 이었다. 요리사가 되어있던 그는 언제 한번 자신의 식당에 들리라는 지나가는 말 투의 전화에 마음이 심하게 요동한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그 식당을 찾았고 주차를 한 후 뚜벅뚜벅 식당으로 걸어갈 때 여지 없이 카메라 앵글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시선을 대신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어색한 연인처럼 대화를 했고, 결국 캐빈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캐빈은 샤이론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 (Who is you, man? Who is you, Chiron?)' 샤이론은 말한다. '자신의 몸을 만진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그리고 서로는 서로의 어께에 손을 얹으며 자막이 올라간다.
오늘 세월호는 뭍으로 인양되었고, 세척과 살균을 끝내면 곧 아홉명의 미수습자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 될 예정이다. 수영을 배우다가 물을 많이 들이킬 경우 머리까지 띵하게 올라온 경험이 있다. 샤이론이 수영을 배우는 카메라 앵글에서 물에 대한 공포를 떠올렸고, 세월호 아이들이 남겼던 휴대폰의 영상에서 우린 그 아이들의 질렸을 공포를 상상하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탄핵의 직접적인 그리고 법적이 사유는 되지 못했지만 어쩌면 아무렇지 앟게 시술을 하고 머리를 올린 그녀의 카메라 앵글은 피사체를 향하지 못했다. 수많은 재일교포와 대학생 중국동포들이 간첩의 누명을 쓰고 40년이 넘도록 간첩 조작 사건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있던 김기춘은 이제야 구속되어 그 추악한 노년의 모습으로 언론에 등장한다. 샤이론의 교실로 들어가 의자를 내리쳤던 그 시각의 분노가 언론에 제대로 담겼다면 무고한 간첩 용의자들이 이렇게도 많이 이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일용직 노동자, 알바생들, 개성공단 사업자, 위안부 할머니들... 그 어떤 우리들은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머리로만 이해를 하고 있었을게다. 엠마스톤의 미모를 스마트폰에 담다가 아카데미 작품상 수장작 봉투를 바꾸어 버린 한 관계자처럼 걸그룹의 화려한 율동과 노래를 들으며 당면한 현실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훈남훈녀의 화려한 댄스와 사랑을 담은 영화 대신에 두 흑인의 우울하고 어색한 밤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이 옮겨졌다. 신자유주의가 성행하고 아직도 괴물같은 대통령이 당선되어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근본도 없는 미국의 철학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얄량한 이데올로기 하나 정리를 못하는 대한민국의 그것 보다는 적어도 뒤져있진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낮은 자세로 우리 자신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까? 초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의 넓게 깔려 보이는 뷰를 보면서, FHD TV에서 돈으로 제작된 종편 뉴스를 보면서 그냥 머리로만 아픈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후안은 어린 샤이론에게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말아.'
그렇다. 우린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명령을 받으려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새로 뽑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 어려움을 극복해 줄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서는 흑인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빠른시간에 우린 푸른 달빛으로 까맣게 태워버린 우리의 분노를 조금은 식혀야 하고 냉철하게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거짓없이 논의해야 한다. 우리의 잘못된 역사도 그리고 억지로 만들어진 서로에 대한 증오도... 때론 어두운 달빛으로 좀 더 선명하게 우리를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많은 대한민국의 종북 빨갱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