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왕자 부크공주 - 4월 14일
아이들이 집에 없으니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은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던 영화를 한 달에 한번 꼴로 보는 것 같다. 그동안 도큐영화, 사회영화, 예술영화를 보다가 수준을 원래대로 되돌려 상업영화를 예매했다. 내 수준은 딱 이런 것인가? 단순히 한석규의 매력만으로 선택했다.
영화 : 프리즌 (The Prision)
장르 : 범죄, 액션 (2017.03.23 개봉, 대한민국)
출연 : 한석규 (정익호 역), 김래원 (송유건 역), 정웅인 (강소장 역), 이경영 (배국장 역)
대학가요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해변가요제가 중학교 때 한참 친구들 사이에 인기였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강변가요제가 대세였다. 이선희, 이상은 그리고 대학생 때 너무 좋아했던 가수 박미경 모두 다 강변가요제 출신이다. 한석규가 당시의 강변가요제 출신이었고, KBS 성우로 배우의 길을 시작했다는 것은 일부 알려진 사실이다.
<쇼생크 탈출>이나 최근 국내 영화 <검사외전>등과 맥락을 같이하는 영화로 좀 더 그 폭력성에서 차별화되었다고 설명하면 적절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저질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겨우내 쌓였던 국정농단의 분노와 깜도 되지 않는 대선후보들의 코미디에 웃기기는커녕 화가 나는 가슴속 응어리를 시원하게 털어 버리는데 그만이지만,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몸을 움찔하게 하는 잔인한 장면에 집사람은 젊어서 데이트하던 시절 이후에 그렇게도 꼬옥 내 손을 잡았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신문사에 근무하는 형이 사건을 취재하던 중 의문사를 당하게 되고 이를 추적하는 동생 송유건 (김래원 역)은 위장 죄수가 되어 교도소로 들어가서 정익호(한석규 역)가 구축한 거대 비리 왕국과 맞선다는 내용이다. 바뀔 것 같지 않은, 비리와 위선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여당에 입당하여 대선후보로 등록하겠다고 하는 한 정의로운 컬럼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송유건은 정익호의 주변에 접근하기 위해 입소를 하자마자 기득권들에게 무한한 저항을 하면서 트러블을 메이킹한다. 그리고는 실컷 얻어맞고 재래식 변기만 있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차가운 독방에 자신의 아픈 몸을 눕혔다. 90년대 김영삼 정권의 시대적 배경을 극 중의 신문을 통해 언뜻언뜻 암시한다. 그곳 교도소의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노동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수많은 시민, 정치인, 학생들은 살인, 강간, 폭력범들이나 수용할 만한 열악한 환경에 감금하고 탄압한 그 환경과...
정익호의 교도소 생활은 제왕적 군림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따뜻한 독탕에 몸을 담그고 근사한 집무용 의자에 앉아 양주잔을 기울이고, 범죄사업으로 벌어들인 돈뭉치를 교도관과 교도소장에 건네며 바깥을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거대 범죄의 본거지를 교도소로 옮겨 놓고 그들의 알리바이를 철저하게 조작했다. 오늘, 어느 전 대통령이 그녀가 배정받은 3.2평의 독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도배를 요구했으며, 방을 정비하는 동안 교도관들이 머무르는 사무실에서 지낸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하루 종일 공분을 자아내었다. 구치소에서는 특혜가 아니란 해명을 했지만 정익호가 몸을 묻어었던 따뜻한 교도소 내의 독탕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때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큰 평수의 독방과 교도관의 사무실이 특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세팅한 2017년의 대한민국의 현실은 가난한 개성공단 사업자들의 좌절, 나라가 변변치 못해 지키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청춘에 대한 위로는커녕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대못을 더욱 죄고, 이제 갓 졸업한 인턴 감성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3년 동안 짠 물을 마시고 있을 세월호의 아이들....
그녀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배고파서 사기를 치거나 절도를 저지른 잡범들보다 우대를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는 것이다.
쉰이 넘은 동갑내기 한석규의 눈빛과 음성에는 세월이 주는 인생의 중후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젊었을 땐 뭔가를 해낸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별게 아니더군요"
그때부터 그는 몸과 마음이 힘들었고, 나이들어 그가 추구해야 되는 가치를 발견했을 것이고 그것이 고스란히 그의 연기에 녹아들었던 것 같다. 고민, 번민 이런 것들이 성숙의 밑거름이었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많이 아프다. 힘들지만 우리가 잊었던 가치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고 있다. '세탁기에 넣고 돌린 대한민국' 그래서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죄수를 감시하는 석양 아래 전망 초소에서 정익호는 캔맥주를 들이키며 송유건에게 말했다.
"경치 죽이지. 비결이 뭐냐고 했지? 그건 제일 윗대가리부터 조지는 거야."
누군가 아니라고 말할 때 그에게 가해지는 처절한 폭력에 대부분의 죄수들은 복종을 한다. 그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면 모두는 '그가 구축한 제국'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공포를 우리는 광화문에서 극복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세탁기로 한 번에 깔끔해진 수트를 입을 수는 없겠지만 우린 서로에게 묻어있는 흙을 털어주며 오염된 대한민국을 조금 더 깨끗하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천천히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일 또 촛불을 태운다. 그리고 이젠 그 누구도 우리에게 종북의 프레임을 씌우거나 물대포를 겨누진 못한다. 대신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진실을 호도하는 거짓에게는 강하게 응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강력하고 건강한 우리들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