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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May 27. 2017

영화 <노무현입니다>: 시민들 마음속에 불사조

씨네왕자 부크공주 - 5월 27일

 지난 토요일 딸아이 봉사시간, 학원시간 그리고 밥은 어떻게 먹을 것인지 세밀한 지시를 하고 집사람은 친구들과 KTX에 몸을 싣고 경북 봉하마을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오래간만에 온전히 쉬나 했던 주말을 딸아이 스케줄과 같이 하다 보니 나도 대입 수험생처럼 긴장감이 들어 이것도 심심치 않게 스트레스를 느낀다. 그냥 회사 나가서 일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8주기 기일은 특별했다. 겨우내 꺼지지 않았던 노란 촛불이 정권을 바꾸어내고 그의 친구 문재인을 다시 대통령 자격으로 불러내었다. 촛불은 온통 노란 풍선이 되어 미래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어 올렸다.


 영화 : 노무현입니다

 장르 :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2017.05.25 개봉, 대한민국)

 감독 : 이창재

 출연 : 노무현, 문재인, 유시민, 안희정 등 31명


지난해 가을 개봉했던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그 결을 같이 하는 영화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바보처럼 국회의원 도전하는 부산과 여수의 두 무현 (노무현, 백무현) 이야기를 번갈아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2002년 월드컵보다 뜨거웠던 새천년 민주당의 2% 지지율의 경선후보가 대선 후보로 당선되기까지의 기록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 노무현의 실체를 이야기한다. 아주 길고 힘들었던 인생을 살았던 중년들이 '먼 과거처럼 변해버린 아프고 저민 기억들을' 소탈하게 하나씩 꺼내 듯이 이야기해준다. 모든 인물들의 얼굴은 클로즈업되어 큰 화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구성되고 그 큰 눈가에는 한결같이 그렁그렁하게 한 품격 있는 반항아의 인간적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내렸다.


2002년 월드컵

이창재 감독의 오랜 구상이 실재 <N-Project>의 실체로 실행에 옮긴 것은 작년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결과되면서 였다고 한다. 블랙리스트가 시퍼렇게 살아 숨 쉬던 시절에 영화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펀딩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개봉관을 확보하는 것은 노무현이 민주당적으로 부산시장에 출마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제 2기 노무현 정부인 지금의 기대감을 생각하면 언론들이 흥행에도 실패할 것 같지 않는 예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 같다.


7명의 새천년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제주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국민참여경선제도>를 통해 레이스가 시작된다. 불사조 '이인재', 리틀 김대중 '한화갑' 등 쟁쟁한 경선후보들 사이에서 이른바 <족보 없는 정치인> 노무현의 돌풍을 하나씩 꺼내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16개 시도 경선 과정에서 '노사모'를 중심으로 불어 오르는 <노풍>은 <태풍>처럼 끓어올랐다. 그들의 열기는 돈으로 표현될 수 없는 뜨거운 응어리가 폭발한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들 가슴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던 '상식과 정의'라는 기본 욕구가 저렇게 더러운 정치판에서도 표출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Tipping point를 넘게 만든 것이 아닐까? 뜨거운 지지자들의 눈물 나는 노력은 마침내 그를 경선후보로 나아가 16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게 된다.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는 중단해 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힘을 합해 저를 공격하는 것을 받아내기도 참 힘이 듭니다. 뭐가 잘 못 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돌아가신 장인의 빨치산 경력을 알고 결혼했습니다.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다고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론 국유화에 대한 중상모략에는

 "언론 국유화, 그 어느 언론사도 대통령이 폐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에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


영화 노무현입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을 그는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노무현의 그림자는 아주 짙게 드리워져 치명적 매력에 아직까지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나라종금 사건'으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릴 때, 대통령 노무현은 '그 사람은 나의 동업자'임을 분명히 하면서 소위 말하는 꼬리 자르기를 거부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유시민 작가는 후보 시절 그는 '노무현의 시대가 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대가 오더라는 그는 그 자리에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고 회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여러 번 흘린 눈물로 인터뷰가 자주 중단되었지만 끝내 그는 인터뷰 중에 눈물이 촬영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는 친구가 글을 쓰는 스타일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삶도 죽음도 인생의 한 조각'라는 그분의 유서는 죽음에 대한 오랜 생각을 표현한 후 간추리고 간추린 흔적을 느꼈고 그동안 그 맘을 오랫동안 외롭게 두었다는 죄책감에 슬퍼했다.

배갑상 선거전문가는

 '화를 내는데 그 말에는 슬픔이 보이고 영구 중독되어 빠져나오기 힘들다.'

라는 말을 했다.

그의 오랜 친구 노수현 운전기사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가 걸어온 길을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굳건했고 불의를 보면 그 불의에 정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항거하는 깨어있는 시민이길 원했습니다. 저는 운전기사이지만 누구에게도 이야기합니다. 깨어있는 시민 1인이 항상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서거 이후 세쨋날인가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주최측은 조문객들 중 노약자나 어린이, 임산부 등에게 줄을 서지 않고 먼저 분양하도록 배려를 하려 했으나,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그 긴 줄을 이탈하여 먼저 조문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줄어드는 긴 행렬에 장대 같은 빗속에 국화꽃을 들고 기다렸다. 배갑상 씨는 '노무현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지도 않았고 <노사모>도 아니었고, 참여정부에 그 어떤 관계도 없었던 이 사람들이은  <노무현>이었다. 이 사람들이야 말고 정말로 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들이었구나.'라고 언급했다.

빗속 조문 행렬

 잘 알고 있는 영상과 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새삼 새록새록 느끼게 된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이 사람의 인생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기 이전 혼탁한 세상의 작은 이정표인 것 같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세상이 자타에 의한 발생한 미세먼지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것 같다. 우리가 아직도 돈과 개발의 환상에 사로잡혀 '같이 살아가는 세상',  '뜨겁고 정의로운 세상'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곁에 같이 있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 속'임을 말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시대적으로 조금은 늦은 감은 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돈과 명예와 경쟁이 아닌 뜨거운 마음에 기반을 둔다는 사실을, 그리고 남들 보다 앞서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손쉽게 하는 값싼 자본주의 정서에 따끔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린 힘들지만 다시 순수해 지려하고 있다. 5.18 유족과의 포옹 하는 대통령, 초등학생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대통령, 눈물을 숨기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노무현의 친구에 열광하는 이유, 그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어느 구석엔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묻혀 있다가 폭발한 인간 노무현이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 실패로 인한 지지율 급락 그리고 원대한 개혁과제의 실패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꼭 도와주었어야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조그맣게 숨쉬고 있던 <정의과 양심>을 발견하고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5월의 눈부신 햇살. 그 보다 더 뜨거운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는 영화 <노무현입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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