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왕자 부크공주 - 7월 22일
'중국 해안따라 원전 56기 집중... 유사시 사흘이면 한반도 덮쳐'
금일 조선일보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스모그 없는 새 성장 동력', '전력생산 비중 3%->10% 추진', '간판 수출 상품으로 키우고 있고', '한국 혼자서 탈원전해봤자...'
이 워드들은 부제목이다. 최근 신고리 5,6호기 신규 원전에 대한 건설 일시 중단에 대한 보수 언론의 반격이지만, 논리는 조잡하기 그지없다. '옆집에서 쓰레기 마구 버리니 우리만 종량제 봉투 쓸 일이 없다?' 또는 '부자들 탈세하니 우리도 세금 낼 필요 없다?'는 논리와 다름이 없다. 2011년 후쿠시마의 원전 참사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노후 원전의 재가동, 원전을 수출 주력 상품 육성하는 등의 반 환경 정책을 펴왔다. 세계 각국이 탈원전을 착수하는 것에 반해 역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을 물려주려 하는지... 작년 겨울 경주 지진 이후 개봉되었지만 사안에 비해 반향이 크지 않았던 영화를 IPTV에서 다시 끄집어내었다.
영화 : 판도라
장르 : 드라마, 스릴러 (2016.12.07 개봉, 대한민국)
감독 : 박정우
출연 : 김남길, 김주현, 정진영, 김영애...
에피메테우스는 '뒤늦게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균형 있는 분배가 가능한데, 만물이 창조될 때 좋은 재능을 짐승들에게 다 써버리는 우를 범하였다. 그리고 같은 임무를 맡았던 그의 형 프로메테우스 (먼저 생각하는 자)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가장 늦게 만들어진 인간에게 주어서는 안되는 '지혜와 불'을 선물했고 명령을 어긴 죄로 코카서의 바위산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제우스는 필요 이상의 선물을 받은 인간에게 벌하기 위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진흙을 빚어 만들게 한 최초의 여성 '판도라'를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한다. 이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를 전달하는데 그 안에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재앙과 악덕이 모두 들어있었다. 제우스의 계획을 사전에 눈치챈 형 프로메테우스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이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선뜻 받아들인다.
당초의 기대와 달리 이 영화는 그리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450만 정도면 괜찮은 건가?) 아무튼 영화의 스토리는 익히 예상할 만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재난이 일어날 현장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조현상과 재난을 겪으며 드러나는 가족들과 과거사와 갈등, 그리고 어수룩한 국가적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점이 키우는 총체적 재앙 등의 할리우드식 재난영화의 기승전결을 그대로 답습하는 평이한 구성의 영화이다. 세월호참사와 메르스사태를 겪으며 무능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의심이 들었고 작년 경주지진으로 바뀐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우리나라의 무능한 정부 또한 공식처럼 이 영화에 등장했다.
재혁(김남길 역)의 아버지와 형은 원전에서 근무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는 이 원전에서 근무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라 했다. 차라리 원양어선을 타려고 했으나 어머니(김영애 역)은 불안한 아들의 모험을 여느 어머니처럼 반대를 했다. 재혁은 '가만히 있으라'는 기성세대의 주문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에 경주에서 경험했던 것보다 조금 높았던 진도 6.1의 지진이었다. 노화된 원전 1호기가 폭발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경남 일원의 주민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이에 처음부터 원전사고를 예감했던 소장(정진영 역)과 재혁을 비롯한 그 친구들의 2차 폭발을 막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전개된다.
1차 폭발 후 수습 과정에서 원전의 재가동이 불가해짐을 우려해 관료들은 해수를 이용한 냉각을 반대했고 이 과정에서 사태를 점점 키우게 된다. 에피메테우스의 후손들은 그렇게 생각들이 짧았다. 석탄발전과 달리 미세먼지가 발생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라 여기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에 비싼 전기료를 견디다 못해 우리나라로 이전한 일본 기업들이 탈핵을 하면 다시 값싼 전기료의 매력을 잃은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협박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원전 기술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사고의 우려는 없고 기술 수출의 효자 상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판도라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소 뒤로 5호기 6호기를 건설되고 있었던 것이다.
2003년이었던 노무현 정권 때인 것 같다. 임시로 보관하는 핵 폐기물이 2018년 그 용량이 고갈됨을 대비하여 새로운 핵 폐기장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자체로는 부안군수가 유일하게 유치를 신청했다. 이후 극렬한 주민들의 반대로 신청을 철회했던 것 같다. 그토록 위험한 핵 폐기물 임시 보관소의 하부에 균열이 생겨 냉각수가 새고 있음을 발견한 소장은 바닥을 폭파하여 결과적으로 하부에 통째로 큰 물통을 만들는 방식으로 2차 폭발을 방지하는 의견을 모으게 된다. 그리고 그 임무를 맡는 재혁만을 남기고 동료들은 밖으로 나가면서 출문을 봉하게 된다. 미국 영화 <아마겟돈>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의 대미와 최후의 감성을 만들기 위해 재혁은 헬멧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전국 방송으로 어머니와 가족에서 영상 편지를 남긴다. 대부분의 평론에서 이 부분의 억지 설정에 혹평한다. 하지만 나는 변호인에서 보았던 국밥집 어머니가 또다시 세월호의 부모가 되어 이 영화에서 오버랩되었다. 3년이 넘은 세월호의 충격이 그 어떤 사고 보다도 컸던 이유는 희생자가 다수의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남긴 휴대폰 영상과 그것을 보았던 세월호 부모들의 처절한 마음이 100% 씽크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안 정국과 부림사건의 피해자 어머니는 또다시 3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식의 죽음을 영상으로 바라보는 죄 많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잘못된 국가 철학의 희생자로 장면을 재현했다. 핵 연료봉과 차갑게 푸른 물속에 천천히 떠오르는 재혁의 주검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사로 마무리한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잘 묵고 잘 사는 세상 물려주고 싶나? 아니며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 물려주고 싶나?"
추가 신규 원전 건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이 질문에 분명히 답을 하셔야 한다.
국민연금 고갈된다고, 경제성장률 떨어진다고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한다. 그리고 한 눈 팔 시간도 없이 학교에서는 부지런히 똑똑하고 근면한 노동자로 강하게 키워낸다. 그리고 그들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통해 알량하게 얻어지는 봉급으로 기성세대가 비운 국민연금을 채우고, 또 우리가 열심히 축적했던 밀어 올린 고가의 아파트와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맬 것이다. 올해 심상정 대선 후보의 '청년상속제' 공약처럼 자식세대의 미래와 희망을 고민해야할 기성 세대가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핵 폐기물과 위험한 시설을 또 이 비좁은 국토에 유산으로 남기는 것은 지금이라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역량을 집중해 보자. 위험을 물려줄 바에 차라리 가난을 물려주자. 가난은 의지를 불태우는 불쏘시개 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방사능으로 노출된 좁은 땅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마치 코카서의 바위산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가 보내는 고통스러운 그 상황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원전 5,6호기 건설 임시 중단을 즈음해서 다시 돌아본 재난 영화 <판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