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일어나 팔토시, 작업화, 썬크림을 주섬주섬 챙겨 에코백에 넣고 집을 나섰다. 늘 8.15일 광복절에는 종중 선산에 모여 벌초를 한다. 대단한 집안도 아닌데, 십몇 년 전 서울 근교에 위치한 집안의 선산이 신도시 개발로 흡수되면서 감당 못한 돈이 생겨 버린 게다. 돈은 조직을 만들고, 평생에 처음 뵙는 아저씨와 조카들을 만나게 되었고, 종친회가 결성되었다. 이전한 김포의 선산에 일 년에 몇 번은 참석해야 하고, 집안의 종손 격인 나는 빠지지도 못하고 투덜투덜 거리며 즐거운 공휴일을 늘 반납한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오고 무덥지 않아 좀 견딜 만하다.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하고 시대적 흐름이 극적으로 변하는 요즈음, 오늘 광복절은 좀 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지정학적인 우리의 위치는 늘 외교적으로 편안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북한은 연신 미사일을 쏘아대고,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라고 돈타령이다. 일본은 광적으로 다시 쌈닭이 되어 날뛰고. 오늘 대통령의 연설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우린 어쩌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 성실성을 우리 후배들에게 요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숙명처럼……
중고등학교 학교 시절에 우리는 서대문 형무소 근처의 현저동 산동네를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등하교 길은 늘 빨간색 벽돌로 높게 쌓인 형무소 옆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독립문' 옆에 약국건물을 끼고 계단을 20분 정도 오르면 우리식구가 방한칸 월세 들어 살던 낡은 한옥이다. 지금의 나 자신의 <저항의식>은 지역적 정기가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들었던 결과인 것 같다. 작년에 그곳에서 있었던 <삼일절> 기념식은 진한 학창 시절의 향수와 조국애가 뒤엉켜 먹먹하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서대문 형무소>
일 년 전 요맘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삼일운동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학습하듯이 ‘우리가 만들어 갈 제품에 대한 세미나를 하는데 참석하겠냐’는 제안을 대표께서 하셨다. 누가 나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계 독립>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에 끌려서 <판교 포스코 ICT> 건물을 어느 일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그날도 비는 오늘처럼 주적거리며 왔던 것 같다. 황당했다. 슬리퍼를 끌고 반바지 차림으로 마중 나온 이 전무와 기획팀에서 잘 지내고 있는 박상무가 단출하게 나를 맞았고, 크리넥스 박스가 덩그러니 놓인 임시 공간을 바라보면 내가 없으면 폐강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명의식을 느꼈다. 독립운동을 하겠다는데 의병이 생각보다 숫자가 적었고 나이도 다 많았다. 스펙 한 장 덩그러니 놓고, 사무실도 없이 지금부터 의병을 모집하고 장총과 수류탄을 구해와야 한다. 적군의 동태도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이제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의병도 모이도 총과 수류탄과 총알도 어느 정도 준비되었다. 전쟁에 나아가야 하는데…… 폼 나게 뒤에서 칼을 빼어 들고 고함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30년 이 짓 했으면 되었지 말년에 난 또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올라갈수록 산길은 좀 더 거칠어지고 지나온 길을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판교 IT밸리>
세계의 내놓으라고 하는 반도체 회사들은 치킨게임으로 그 엔진이 멈추는 동안에도 삼성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2002년부터 17년 연속 1위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고, 가속 페달을 더욱 힘차게 밟은 결과 인텔의 매출을 이미 넘어섰다. 기흥의 4층 건물 연구소에 선배님은 코끼리만큼 거대한 <SUN> 모니터 앞에서 simulation 수행 명령을 넣고 경쾌하게 엔터키를 때렸다. 그리고 담배 한대 물고 긴 호흡을 했다. 모니터 위에 아련히 퍼지는 흰 담배연기를 보며 신입사원 연구원은 자신은 언제쯤 저럴 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도 같이 골라주지 못했고, 돌도 지나지 않은 큰아이 업고 분당의 어느 임대아파트 입구에서 자정 너머 늘 나를 기다렸던 집사람에게도 <날밤 까고> 근무했던 내 과거는 트라우마로 아직 남아있다. 술자리에서 들려주던 어느 선배의 기억처럼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 없었고.” 그 덕분에 세계 최고의 회사를 우린 만들었던 것 같다. 리프레쉬를 자주 하는 DRAM이 되었건, 30V로 강하게 트랩 하는 NAND Flash가 되었던 메모리를 만들었던 엔지니어는 또 어떤 기억을 원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또 불안한 맘으로 깃발을 들었고 누군가는 또 그렇게 열정을 외치고, 또 누군가는 또 그 대열에서 흔들림 없이 행군해야 한다. 74주년 <독립기념일>을 이런 불안과 갈등으로 시작하지만 80주년 즈음이면 <역사>가 만들어지고, 나 혼자 <삼성반도체>를 다 먹여 살린 것 같이 회상하듯이, 또 어느 후배가 <원세미콘>에 대해 또 그러한 무용담을 회상할 것이다. 이 나이에 바라는 것도 없고 욕심을 부르는 것은 오만한 짓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회사 잘되는 꼴은 좀 보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다. 돌아보지 말자! 자기 연민은 내가 생각해도 좀 추해 보인다. 이제 오늘까지만 돌아보자.
<늙은 군인의 노래>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들 손목 잡고 <한라산 구경>이고
내려와서 고추밭에 잡초 좀 같이 뽑자고 하는 풍경인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ㅠㅠ
늙은 군인이 다시 한번 <낡은 군화>을 조여 매고 마음 다지는 오늘 74주년 <광복절>. 그날은 <원세미콘> 독립 1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