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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기동 일인가구 Aug 23. 2023

2022년 9월 21일

명수가 다쳐서 왔다.

 오전에 출근을 하고 나면 거의 항상 고양이 명수가 마당에 와 있다. 밤새 마당에 있을 때도, 근처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올 때도 있다. 워낙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라 자길 보면 무조건 아는척을 해 달라고 계속 울면서 말을 건다. 아침에 할게 좀 많아서 그냥 눈인사만 하고 가면 문 밖에서 쳐다보고 있거나 계속 울음소리를 낸다. 그래서 항상 머리를 한동안 쓰다듬어 주고, 엉덩이를 탁탁 쳐줘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만족스러우면 제 할일을 하거나 한다. 만져준게 본인 맘에 별 만족스럽지 않다면 손을 치울때 그러지 말라는 듯이 앞발로 한번 나를 잡으려 한다.

익숙한 일상적인 일이라서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자마자 명수를 쓰다듬으려 했는데 녀석 얼굴에 상처가 많이 생겨 있었다. 다른 고양이랑 싸워서 생긴 발톱자국이었다. 긁힌 상처가 꽤 크게 3개나 나 있었다. 많이 놀라고 걱정됐다. 상대의 발톱이 명수 얼굴을 긁을 때 눈가 쪽도 지났는지 눈도 약간 붓고 눈에 눈곱이랑 진물도 좀 있었다. 아침에 할 일이 좀 많았는데 서둘러 끝내고 명수를 봐줘야겠다 싶었다.


후다닥 일을 끝내고 상처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봤다. 다행히 긁힌 게 깊어보이진 않았는데 약간 흉은 생길수도 있어 보였다. 원래도 다른 고양이들과 영역다툼을 많이 하는 녀석이라 옅은 흉터가 얼굴에 이미 있는데 좀 늘 수도 있어 보였다. 눈에 있는 진물을 닦아내주고 예전에 동물병원에서 받아온 고양이용 안약을 넣어주려 했다. 가끔씩 눈에 문제가 생기면 안약을 넣어주고는 하는데 효과가 정말 바로 나타난다. 원래 동물들이 약을 안 쓰다보니까 사람보다 효과가 더 좋은 듯 하다. 하지만 넣어 주는 일 자체가 굉장히 힘들다. 어떻게든 눈에 뭘 안 넣으려는 녀석을 꽉 붙잡고 달래가면서 넣어야 하니까. 알바생 수민이가 녀석을 꽉 안고 내가 겨우겨우 넣어줬다.


어떤 고양이랑 싸웠는지 대충 짐작은 가긴 한다. 그래도 명수가 영역을 지키고 남아있는걸 보니 싸워서 이긴 것 같다. 이전에도 짐작가는 그 고양이 말고 다른 덩치 큰 노란 고양이가 영역을 노리던 때가 있었는데 열심히 싸워서 지킨 경험이 있는 걸 봤었다. 털이 뽑힐만큼 싸워서 마당에서 쫓아내는 걸 내 눈으로도 봤고, 또 다른 고양이와도 목 쪽에 피칠갑을 할 만큼 다치면서 싸운 적도 있었다. 그때도 참 많이 걱정했었는데 금방 나았다.

전에 동물병원에서 명수가 4살정도라고 했는데, 오랜 길고양이 생활에 싸움 하나는 잘 하는 듯 하다.


어찌 됐든 많이 다친게 참 맘이 불편해서 계속 최대한 같이 있어줬다. 쓰다듬어 주고, 장난도 치고, 재워도 주고. 자식이 다치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간식과 밥도 평소보다 더 챙겨줬다. 전에도 누구와 싸우고 오면 오히려 더 습식 캔도 주고, 고기도 주고 그랬었다. 마치 보양식인양 그런 것들을 챙겨주고 싶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친게 생각보다 자기한텐 별 일이 아닌건지 다행히도 평소처럼 장난치고 애교도 부렸다. 지난번 크게 다쳤을때도 생각보다는 금방 나아서 이번에도 기대를 해 본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보다는 많이 나아 있었으면 좋겠다. 간밤에 또 싸우지 말고 얌전히 마당에서 편히 자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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