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미술관을 떠나 앵발리드로 향했다. 로댕미술관에 들렀을 때 장미 덩쿨 너머로 언뜻 보이던 황금빛 첨탑이 바로 앵발리드였다. 앵발리드는 1671년 루이 14세가 부상병들을 간호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었다. 이후 생 루이 성당도 지어지고 정원도 만들어지고, 그 모든 건축물들을 한데 묶어서 앵발리드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첨탑에 이끌려서 발길이 절로 앵발리드로 향했다.
푸르른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서 황금빛 돔을 향해 나아갔다. 뾰족하게 솟은 첨탑 그리고 화려한 황금과 둥그런 돔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 멋있게 보였다. 여행을 다니며 교회들과 성당들을 아주 많이 보았는데 뾰족하게 하늘로 솟은 지붕보다는 돔 모양이 왠지 더 이쁘게 보였다.
앵발리드 생 루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의 유해가 안치된 붉은 석관이 나온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영국의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오랫동안 영국에 있다가 프랑스 마지막 왕인 루이 필립의 노력으로 프랑스에 돌아왔고 성대한 국장이 치뤄졌다고 한다.
로댕 미술관에서 보이던 황금빛 돔, 그 안쪽도 바깥처럼 화려했다. 반짝거리는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동그란 돔에는 천장화가 그려져 있었다. 예수와 12사도를 그린 프레스코화라는데 저 높은 천장에 어찌 저런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건물 곳곳이 아주 세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화려하고 다채로와서 눈을 돌리는 족족 즐거웠다. 베르사유 궁전 공사에 참여했던 이들이 앵발리드 공사에 많이 투입되었다고 하니, 베르사유 궁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달래봐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번쩍거리는 금과 조각들과 하얀 기둥, 구경할 거리들이 많아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황홀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의 무덤들이 많았다. 이곳에 안치된 유해들은 다 프랑스에 공적을 세운 국가 원수나 장군들이라고 들었다. 성당 안을 설렁설렁 걷다가 리요테(lyautey)라고 적힌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관을 발견했다. 루이 리요테, 그는 식민지 장군으로서 인도차이나와 모로코 총독을 지내고 잔혹하게 식민지 사람들을 탄압한 사람이었다. 나폴레옹도 그렇고 리요테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영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침략자일 뿐인 그런 사람들이다. 프랑스인들에게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도 프랑스 국장이 앵발리드에서 거행된다고 하니 이곳에 묻힌 이들이 가진 의미가 대충 짐작이 갔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전쟁은 수도 없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허나 죽어나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 모를 보통의 사람들이다. 영웅으로 남은 사람은 이렇게 평생 이름을 남기며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침략자로 평생 각인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전쟁은 왜 끊임 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서로 죽이고 또 죽이는 행태는 왜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입 안에서 씁쓸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인간이 미워지다가도 또 인간이기에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 냈겠구나 싶다. 다른이들을 핍박하며 여러나라를 식민지화하고 거기에서 부를 얻고, 그 부로 이런 화려한 건축물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들의 유산은 다른이의 피와 눈물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다시 파리를 찾더라도 왠지 이곳 앵발리드는 찾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복잡힌 생각은 하기 싫었지만 혼자 여행을 다니니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