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서 맛본 연어와 글로기! 산타마을 북극한계선 걷기
우리는 산타마을에 있는 투어 오피스에 들러서 얼음 낚시 체험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숙소를 뒤로하고 산타마을로 산책하듯이 걸어갔다. 우리가 묵고 있는 노바 스카이랜드가 산타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투어 오피스까지는 금방이었다. 투어 오피스로 가는 길에 어떤 통나무 움막집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체 무언가 싶어서 나는 줄을 서고 남편은 투어 오피스에 가서 낚시 체험을 예약하기로 했다.
얼떨결에 줄을 서게 된 나는 잠깐 이곳이 중국인 줄 알았다. 주위에서 온통 중국어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움막은 정체가 뭘까, 맛집일까? 줄을 선 이에게 이곳이 유명하냐고 물어보니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연어 맛집이라고 하더라. 왜 중국에서 유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식 겸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줄을 서보기로 했다.
줄을 열심히 서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달려왔다. 낚시 체험을 결제하려는데 카드가 긁히지 않는다며, 내가 전화도 받지 않아서 이렇게 달려온 것이었다. 나에게서 다른 카드를 받아가고 난 뒤 남편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혼자 밖에서 기다리는데 내 앞은 온통 커플 투성이었다. 왠지 더 춥게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드디어 남편이 왔다. 혼자 기다리는 것보다 둘이 기다리니 왠지 덜 추운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해서 그런가?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는 조금 기다렸다가 곧장 들어갈 수 있었다. 통나무 움막 안은 아주 아늑했다. 그리 넓지는 않았는데 가운데에 자리잡은 화로에서 모닥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어서 따뜻했다.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메뉴판을 정독했다. 나무판에 글을 새긴 것 같은 멋있는 메뉴판이었다. 어딘가에 여행을 오면 이렇게 메뉴판만 봐도 즐거웠다. 어디 신기한 메뉴가 없을까나? 연어 전문점이니 당연히 연어는 시킬 예정이었고, 연어 말고도 다른 이색적인 메뉴가 있었다. 'Must Try Snack'이라고 적힌 글씨 아래에는 클라우드베리 쨈을 얹은 핀란드 전통 치즈라는 메뉴가 있었다. 이야, 꼭 먹어 보아야하는 간식이라니 시키지 않을 수 없지! 맨 아래에 적힌 디저트는 스칸디나비안 치즈케익, 스칸디나비안 식이라면 또 안 먹어 볼 수 없지. 결국 세 메뉴를 다 시키고야 말았다.
눈 앞에서 싱싱한 연어들을 그릴 위에 얹어 장작불에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야, 아주 강렬하게 불타 오르는 장작불 위에 구우면 불맛이 살아있겠지? 군침이 흘러 나왔다. 줄을 선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얼어 붙은 몸을 녹일 겸 따뜻한 음료를 주문했다. 글로기(glögi)라는 핀란드에서 크리스마스 때 즐겨 마시는 음료였는데, 뱅쇼처럼 와인에 과일이나 향신료를 넣어 끓여 만든 것이었다. 펄펄 끓는 주전자에 담겨 있던 글로기는 아주 향긋하고 달콤했다. 줄을 서느라 떨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다.
모닥불 구경하며 따뜻한 글로기를 마시고 있는데 구운 치즈가 먼저 나왔다. 잘 녹은 치즈 위에는 클라우드 베리 쨈이 올려져 있었다. 나이프로 푹푹 찢어서 포크로 쨈을 잔뜩 묻힌 치즈를 찍어 먹었다. 녹진한 치즈는 아주 고소했고, 상금달콤한 클라우드 쨈에 더해지니 금상첨화였다. 고소한 치즈와 함께 즐기는 글로기도 너무 맛있어서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치즈를 먹고 있다 보니 드디어 고대하던 장작불에 구운 연어가 나왔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듯한 번뜩이던 연어, 포크로 푹 살점을 떠서 입안에 넣으니 아주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녹아 내리는 듯 했다. 장작불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불향이 입 안에 풍겼다. 마치 숲 냄새가 입 안을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 맛난 연어를 허겁지겁 먹다 보니 어느새 연어는 개 눈 감추듯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일까? 갑자기 앞에 앉아있던 커플이 우리의 기념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카메라를 가져갔다. 찰칵, 뜻하지도 않게 통나무 움막 안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다. 하하.
마지막으로 나온 스칸디나비안 케이크. 사실 이 때 우리는 연어와 치즈로 인해 너무 배가 불러서 도저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케익을 딱 입에 물고 마지막 마무리를 깔끔하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탓에 케익을 포장해서 식당을 나왔다. 이따가 숙소에 돌아가서 뜨끈하게 사우나를 하고 땀을 좀 뺀 뒤에 먹기로 했다. 식당 밖을 나왔는데 아직도 움막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미 배부르게 음식들을 먹고 나온 우리는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밖은 이제 완전히 컴컴해졌다. 산타마을의 형형색색 불빛들이 여기저기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에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타마을, 우리는 산타마을 야경을 돌아보며 눈밭위를 걸어 다녔다.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그런지 바깥 세상이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커다란 눈사람과 트리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늘을 가르고 있는 파란색 불빛은 북방한계선(Arctic Circle)이었다. 저 푸르스름한 선을 기점으로 북극권이 시작된다. 우리는 파란 선 밑의 기둥에 서서 기념 사진들을 남겼다. 얼마 전까지 헬싱키에 있었던 우리, 같은 핀란드였지만 헬싱키와 로바니에미는 분위기가 무척 달랐다. 헬싱키가 보통 보던 도시 느낌이라면 로바니에미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눈을 보게 되었고, 하얗게 다 얼어 붙는 강추위도 경험해 보았다. 코를 연신 훌쩍이며 북극권에 속하는 땅 위를 딛고 서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밤을 맞은 산타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세계에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을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 모두들 마음 속에 품은 동심을 실현해 보고 싶어서였을까? 먼훗날 나에게 아이가 생기게 된다면, 그 때 이 날을 추억하면서 산타마을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 아이에게 자본주의 산타를 보여줘야할테지만, 하하. 그렇더라도 이 반짝이는 산타마을과 무수히 많이 쌓인 눈들을 보고 느끼며 아이에게 행복한 추억을 안겨 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