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와서는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을 둘러보았다. 튈르리 정원 안에 오랑주리 미술관이 있으니 미술관을 돌아보고 나서 튈르리 정원을 둘러보면 여행 코스로 딱이었다.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기와 공장이 있던 부지에 궁전과 정원을 만들게 한 것에서 튈르리 정원이 시작되었다.
튈르리(Tuileries)는 기와 공장이라는 뜻이다. 튈르리 궁전과 정원이 만들어진 이후 앙리 4세가 정원 서쪽에 양잠장과 오렌지 농원을 만들었는데, 그 자리에는 지금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오랑주리(orangerie)는 오렌지 온실이라는 뜻이다. 미술관 이름에 튈르리 정원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뙤양볕이 내리쬐는 튈르리 정원. 자그만한 인공 호수 주위로 초록색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잠깐 의자 위에 앉아서 일기를 끄적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며 일기를 수시로 썼던 것 같다. 혼자서 딱히 뭐 별다르게 할 일이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사진찍고, 혼자 생각에 잠기고 그리고 일기를 쓰는 것 뿐이다. 덕분에 순간순간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노트 안에 남았다. 그 흔적들을 들추어 볼 때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재밌다.
튈르리 정원에서 형형 색색의 꽃들을 많이 구경했다. 9월 말인데도 큼직한 꽃송이가 매력적인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꽃들도 많았다. 그리고 갈색 염소 한마리. 쌩뚱맞게 튈르리 정원에 왜 염소가 있는지 모르겠다. 자유롭게 여기저기 쏘다니던 염소, 누군가의 애완동물인가? 아니면 튈르리 정원에서 돌보는 염소일까?
줄이 늘어선 어느 가게를 발견했는데 젤라또를 파는 가게였다. 콘 위에 젤라또를 장미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파리의 나름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이었다. 오호라, 마침 날도 덥겠다 입이 출출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서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장미 아이스크림을 구입했다. 망고와 바나나, 딸기맛 세가지를 골랐는데 정말 맛있었다.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 초코맛도 고를까 말까 무지 고민했었는데, 초코맛도 넣을 껄 그랬다. 아이스크림은 다다익선이지!
튈르리 정원은 서쪽으로 콩코르드 광장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루브르 박물관과 맞닿아 있다. 콩코르드 광장은 어제 보았으니 루브르 박물관이 있는 동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파리에 가려고 마음 먹었을 때, 이곳저곳 갈만한 곳들을 많이 알아보았는데 루브르 박물관은 굳이 가고 싶지가 않았다. 엄청난 컬랙션들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고 딱히 구미가 땡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난 주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을 좋아했던터라 오르셰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에만 들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이미 프랑스 남부들 돌아보기 전 며칠간의 파리 여행에서 루브르 박물관 외관을 구경하러 잠시 들렀었지만, 근처에 있다고 하니 왠지 한 번 더 가보고 싶었다. 박물관 앞에 놓여있는 투명한 피라미드가 보고 싶었기 떄문이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광장과 투명한 피라미드, 참으로 아름다웠다. 루브르 박물관이 뭔가 오래된 것 같고 전통어린 느낌이라면 이 피라미드는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이다. 처음 이 피라미드가 생기고 나서 파리 시민들에게 흉물이라고 많이 놀림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루브르 박물관을 빛나게 하는 정말 멋있는 구조물인 것 같다.
투명하거 거대한 피라미드, 이집트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 놓인 피라미드 구조물을 보니 신비로왔다. 동서양이 융합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별 생각 없이 보기에는 참 아름다운데 피라미드의 내막을 살펴보면 뭔가 찜찜해졌다. 루브르 박물관에 이집트 유물들이 아주 많다고 들었다. 정상적인 루트로 가져와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도 있을테지만, 도난품들을 사들여 전시하거나 침략 전쟁 시기에 이집트에서 약탈한 유물들도 많을 것이다.
자국인 이집트에서 전시되어야 할 유물들 아니면 원래 제자리에 있어야할 유물들이 이렇게 먼 타국에 와서 전시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