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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내기 Aug 29. 2017

광 안 리

같은 공간 다른 사연들

   눈물도 기쁨도 많았던 나의 이십 대를 보낸 부산을 떠나며 10여 년 동안 나의 추억이 담긴 광안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 거부감 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광안리,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면 떠오르는 곳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들였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어 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바닷가 마을이었으나 부산의 바다는 내가 알던 바다와는 많이 달랐다. 낮과 밤 언제나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생계가 목적이 아닌 관광이나 힐링과 같은 문화생활의 일부로써의 바다였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으로 홀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내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은 바다밖에 없었다. 처음엔 나의 감정을 되새김질하며 정리하는 공간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제각기 사연을 가지고 바다를 찾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광안리를 찾은 사연들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광안리는 취미 사진가에게 생각보다 멋진 야외 스튜디오가 되어 줬다.



이바구

 ‘이바구’라는 단어는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경상도 방언이다. 광안리에 가보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가 많이 온다. 이 사진엔 나이 든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이 자식들에 대한 걱정, 손주가 부리는 재롱, 옆집 사는 총각의 취업 걱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파도 소리에 근심 걱정이 부서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변 산책

 광안리에 가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반려견과 함께 뛰어노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마음껏 짖거나 뛰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이가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에 미소만 나올 뿐. 저 아저씨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외계인 출현

 이 사진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모래 속 금속을 찾아 제거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 순간에 외계인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마치 우리 지구에 착륙하여 자신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인지 조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의 매력은 같은 순간을 보고도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구름이 지나는 다리

 광안대교 위로 구름이 흘러가는 듯한 날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눈앞에 펼쳐진 신비한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본 광안대교 중 가장 아름다웠던 날이었다. 앞으로 이런 날이 또 올까?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여름철이 되면 아이들이 바다로 뛰어든다. 집에 가면 엄마에게 혼나겠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다. 이 순간을 보면서 어렸을 적 친구와 놀다가 바지 주머니에 잔뜩 모래를 담아가서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다 어른

 아이들이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고 ‘신나는 감정을 저렇게 온몸으로 표현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조그만 일에도 깔깔거리며 웃던 그때의 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지금 저렇게 좋아하면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겠지?


서로의 바다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이 예뻤던 커플. ‘사랑하는 사이에는 서로가 모든 걸 포용해주는 바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함께 왔던 바다

 광안리 밤은 여러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연인이 황홀한 야경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이별 후 실연의 감정을 바다에 묻어두려고 오는 이들도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언젠가 비슷한 감정으로 광안리를 찾았던 내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


행복 또는 항복

 할아버지가 손주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할아버지의 표정을 다르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저 할아버지의 표정은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손주의 놀이를 바라보는 것일 수도, 손주의 투정에 찡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행복한 표정이라고 믿고 싶다.


시간의 거울

 한 손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내가 나이가 들어 다시 광안리 해변을 찾게 된다면 나도 저 할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일까?’라는 상상과 함께 셔터를 눌렀다.


내가 찾았던 광안리의 다양한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니 부산 바다의 향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광안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내 모습도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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