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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Jan 26. 2024

일탈

   일탈

'도시는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감정을 만들어 낸다.' 자연을 사랑한 시인 윌리암 위즈위스는 이렇게 도시를 비난했다. 도시의 주인은 소음과 매연이고 혼잡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추한 모습이 더 많이 감추어져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 추한 모습과 혼돈을 정돈하고 바꾸어 보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각종 편의 시설은 인간이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켜 버린다. 가까운 이웃집과도 아래위로 겹쳐서 살아가는 아파트 주거에도 서로 간의 소통은 거의 없다.

소통이 없으면 인간의 감정은 메말라 가고 도시의 생명은 시들어간다.


어제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을 잠깐 되돌아가 본다.  깜깜한 지하공간을 30분간 달린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에스칼레이트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마을버스를 갈아탄 후 10분 만에 하차를 하니 다시 길바닥은 매끈한 보도블록이다. 5분 정도 걸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바로 11층 우리 집 현관이다. 하루종일 흙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다닌 꼴이다. 흙을 밟고 걸어야 마음도 순화되고

건강에도 좋다는데, 이제는 흙을 밟고 걷기는커녕 구경조차 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맨발로 걷기가 요즈음 유행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맨발 걷기 코스를 서둘러 만들어 놓고 생색을 내고 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현관벽에 층간 소음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 소음방지 요령과 협조를 당부하는 권고문이 붙어 있다. 눈살을 찌푸리며 몇 줄 읽다가 말았다.

이제는 밖에서 뛰어노는 어린애들의 소리도 듣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언젠가부터 들어보고 싶은 소리로 변해 버렸다. 아파트 위층에서 어린아이들의 쿵쾅거리는 소리라도 좋으니 제발 들어보고 싶다.  

우리나라 신섕아 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지 벌써 오래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한다고, 아기를 낳지 않는다고 늙은이들이 탓하지 말자. 먼저 나이 먹은 우리가 , 기득권을 가진 어른이 양보하지 않으면, 진중해지지 않는다, 이 나라는 장래도 어둡고 희망도 없다.

도시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소통인데 이웃 간의 소통도 단절되었지만 세대 간의 소통도 심지어 지역 간의 소통도 대부분 단절되어 있다.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눈빛 몸짓이나 그 외  여러 가지 행동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양보도 소통이고, 인내도 소통이고, 용서와 나눔도

소통이다.

오래전부터 도시의 수많은 눈들이 모두 스마트폰 액정 화면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서울을 다녀간 어느 외국인이 쓴 르포 기사를 읽었다. 서울 지하철의 각종 편의시설과 연계 교통수단을 극찬한 후 서울 지하철 내부가 신기할 정도로 정숙하다며 서울 시민의 공중도덕의식 수준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였다. 과연 그럴까?  향상된 시민들의 공공의식 수준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사실은 지하철 내에서 정숙은 스마트폰 사용이 주된 요인이다.

사람과 소통이 아닌 전자기기와 소통하는 메타버스 시대가 바로 지하철 안에서 서서히 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 불허인 시대의 변화 속에 도시의 생명은 점점 떨어지는 겨울 날씨처럼 서서히 얼어붙고 있다.


주말, 눈 폭설이 예보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전원주택 지역이라고 하지만 아파트 단지로 채워져 도시와 다름없다. 벌써 눈발이 돋고 있다. 저녁이 되자 영동지방에는 계속 내리는 폭설로 벌써 많이 쌓였단다.  주초에 중부와 강원도 산간지역에 한파경보까지 내려졌다. 제대로 얼굴값 하는 겨울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쌓인 눈이, 눈 덮인 산야가 보고 싶다. 도시에서 시들어가는 내 생명을 자연과 소통시키고 싶어졌다. 자연의 기를 내 허약해진 영혼 속에 불어넣어 주고 싶다.

오늘 같은 날은 동해 바닷가에 나가  밀려오는 파도에게 아무 말이나 해도 모두 다 들어줄 것만 같다.


"여보, 우리 강원도로 눈 구경 갈까?"

"당신 정신 나갔어?  이 추위에."

이웃 간의 소통만 막힌 게 아니라

이제는 부부간의 소통도 어려워졌다.

"그럼 내일 교회 갔다가 예배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양평역에 내려 줄래."

"???    "

마치 당구공처럼 공이 나아간 방향과 세기만큼 그대로 되돌아왔다.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나 홀로 조용히 일탈을 하는 것뿐이다.

다음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서둘러 중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바깥 온도가 최저 영하 12'C 이기 때문이다.  8:22분 청량리발 강릉행 KTX를 타려면

6시 반 이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열차를 탄 후 자리에 앉고 보니 아내도 곁에 앉아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덮인 대관령 터널을 쾌속으로 져나와 강릉역에 도착하니  오전 10시도 채 되지 않았다.

10시 14분발 동해행 무궁화 열차를 갈아타고 정동진을 지나 묵호역에 내리니 아직도  11시다.

서쪽으로는 눈 덮인 태백준령이 길게 드러누워 잠에서 깨어날 채비를 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짙푸른 겨울 동해가 아침 합창을 시작한 지 벌써 오래된듯 하다.

묵호항 방파제 테트라포트에 부딪치며 내는 동해바다의 노랫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목이 쉬어 있었다. 오후 3시 20분에 태백, 제천을 경유하여 청량리로 가는 태백선 열차를 타기까지는 아직 4시간의 여유가 있다.

묵호항 등대로 올라갈까?

바닷가 길을 따라 트레킹을 해볼까?

이곳 수산 시장에 들어가 싱싱한 가자미 몇 마리

잡아놓고 소주잔을 기울여 볼까?


바다 그리워

깊은 바다 그리워

산이 그리워

높은 산이 그리워,,,,,


" 자연은 우리에게

내부의 정신을 가르치고,

고요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명을 주고,

또 높은 사색으로 우리를 양육하기에,

어떠한

험한 말이나 경솔한 판단도,

이기적인 사람들의 조롱도,

친절한 마음이 깃들이지 않은 인사도,

또한 일상생활의 황량한 교재도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

                  -위드위스-

"장 보람된 시간은 남을 용서해 준 시간이고

가장 행복한 시간은 자연과 함께한 시간이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받은 카톡 속의 글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 글에서 처럼 자연에 취하고

발효시킨 동해 물회에 취했다가 몽중에 눈을 다시 뜨니 벌써 청량리역이다. 5시간 걸리는 귀향길도 찰나처럼 지나가 버렸다.

겁으로 산 하루였다.

일탈이다.


     2024.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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