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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Feb 04. 2024

채워진 하루

 사라진 하루

수원발 오전 9:12분 장항선 열차를 타고 보니 철도청이 개발한 서해안 금빛 관광열차라 치장이 요란하다.

오늘 최종 목적지는 대천항과 대천해수욕장이다.

2시간 남짓 달린 후 대천역에 내리니 아직 오전 11시다.

격세지감이다.

처는 이곳에서 성장시기를 보냈단다. 지난날 이곳에 한번 다녀오려면 하룻밤을 묵어야만 가능한 곳이었다.

말끔하게 단장된 새 역사를 빠져나오니 광장에 바로 대천항행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한 4차선 도로를 15분 정도 달려가니 바로 대천 해수욕장이다.


아침에 겨울비 소식이 있었으나 도착해 보니 바다 쪽 서편하늘이 훤하다. 간간이 구름 속으로 내리는 햇살이 바다 수면 위에다 열심히 은빛 찬란한 수를 놓고 있다.

그냥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린다.

썰물 때라 물 빠진 백여 m 폭의  백사장 길이가 족히  4km는 되어 보이는 것 같다. 텅 빈 대형 백사장이 촉촉이 젖은 채 얌전하게 누워있다. 아직도 바닷바람은 귓뽈이 시릴 정도로 차지만 햇빛이 점점 두꺼워지니 견딜만하다. 바람은 차지만 서해 바다를 건너오는 봄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서해안 특유의 부드러운 파도가 우리를 반긴다. 천천히 밀려왔다가 포말로 합장 인사를 한 후 모래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물이 빠진 물가를 따라 걷는다.

발이 빠지는 마른 모래 위를 걷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물을 머금은 모래는 제법 딱딱해서 발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잔잔히 밀려오던 파도가 부서진 후에도 한참이나 평탄한 모래 위로 밀려오며 노래를 부른다.

"자르르 자르르, 사르르 사르르"


가끔 숲 속이나, 산능선이나, 물가를 지나가다 자연과 깊은 교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때는 사고의 중추신경을

모두 멈추고 깊은 심호흡을 하며 자연의 기를 가슴속에 끌어당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다와의 교감이다. 지난주 동해로 나가보았지만 이런 교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서해바다만이 주는 독특한 감흥이다. 특히 조용히 밀려오는 파도가 그렇다.


"어서 오세요."

파도가 다가오며 인사한다.

"혼자 오셨나 봐요?"

"아니, 아내는 물만 보면 오금이

 지린다고 길 따라 걷고 있지"

 "그럼 더 잘됐네요,

   저랑 단둘이   재미있는 얘기 할까요.

   뭘?  

  당신의 가슴에 품고 있는 것들

  많이 무거워 보이는 돼요.

  그냥 저한테 주고 가실래요.

  그냥 내려놓고 가세요.

  저가

   가벼운 것은 모래 속에,

   무거운 것은 물속에

   꼭꼭 숨겨 드릴태니,

   그냥 내려놓고 가세요.

   망설이지 마시고요

   아유, 답답하게 시리,

   그럼 저 따라 한번 해 보실래요.


억울한 일 당했나요?

그냥 잊으세요. 자르르

열받은 일 있었나요?

그냥 이 물에 식히세요, 사르르

귀가 막힌 일 당했나요?

그냥 저 주세요, 내 귀는 넓어요

분통이 터질 일 있었나요?

그냥 저 주세요. 내 맘은 깊어요.

더 없나요?

그럼, 천천히 당신의 귀를 열어보세요

그리고

내가 부르는 노래를 한번 들어보세요.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난 그 사람'

만남이 얼마나 귀한 일인데,

아직도 모르셨나 봐요.


이제부터는 당신의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남의 노래를 더 많이 들어야 해요.

나처럼

전, 수 십만 년을 두고

남의 노래만 듣고 이렇게 살고 있답니다.

당신의 노래도 나한테는 한낱

모래알에 불과할 뿐이지만......."


'당신의 노래가

이렇게 들리는데

여기는

사랑이 있어서

나는야 좋더라

오 예 예 예'


   2024, 2, 2

         대천해수욕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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