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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Feb 17. 2024

Reply Syndrome

  Reply Syndrome


2018년 Social Media인 Facebook은 종전에 사용하던 알고리즘을 수정하였다. 이는 자신의 SNS에 접속한 회원들이 정제된 의견이 아니라 친한 의견이나 관심 있는 의견들만 많이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변경한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용자가 더 많은 시간 동안 자신들의 Network에 머물게 함으로써 회사의 수익(광고) 급증하도록 만든 것이다. 

상업적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한 것이다.  

미 의회 청문회에서도 밝혀졌듯이 사용자들이 자기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커뮤니티별로 나누어지는 사회 현상이 심화되었다. 생각이나 정치적 이념이 다른 집단 간에 사회적 증오와 갈등이 증폭되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세계 초일류 광케이블 사회통신망이 전국적으로 깔려있는 우리나라가 당연히 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Social Media 메이저 기업들은 자신들의 Network을 활용하여 활동하는 개인이나 집단 중 Influencer가 많은 Fellows들을 확보하면 금전적인 보상까지 해준다.

그러다 보니 정제되지 않았거나, 자극적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묘하게 각색하였거나, 왜곡시킨 기사들이 SNS 공간을  난무하고 있다. 진위여부를 밝히는 양심 있는 일부 언론사도 있지만 활용자체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심지어 몇몇 메이저 언론사들은 이런 검증되지 않은 사건들을 기사화시키기까지 한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런 사회현상을 감시하거나 제재하는 법적인 제도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완전 무방비 상태사회통신망을 이용한 가상현실 속에 누구든지 들어와 제 멋대로 춤추고 있다.

이로 인해 세대 간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이념 간의 갈등은 이미 도를 넘어섰고

지역 간의 갈등도 아슬아슬한 수준에까지 다다랐다.

계층 간의 갈등은 상호 무시로 변하였지만

언제 폭발할지 예측 불능이다.

비대면 소통이라 남녀 간의 갈등은 이제 구분마저 모호해져 오히려 평등해져 가는 느낌마저 든다.


밤잠을 설쳐가며 사회통신망을 열심히 셔핑 한 열성 messenger가 자기 기호에 맞는 자료들만을 잔뜩 수집한다. 마음이 급해진다. 날이 밝자마자 수집한 자료들을 나름대로 분류한 후 카톡이나 밴드, 메타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하여  펴 나르기 시작한다.

이 자료를 받아 볼 상대의 의사는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보다 무식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에 자기가 전달하여 가리켜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득 차 있다.


이런 사람들을  "Reply Syndrome"의 한 부류인 "Syber Reply Syndrome"이라고 한다.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은 성취욕구는 강하지만 무능력한 개인이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하여 열등감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자신이 만든 허구의 세계를 진짜 또는 최상이라고 믿고 유사한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일종의 반 사회적 성격 장애자다. 이미 공론화된 공통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만의 주장이 진짜라고 믿고 사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SNS를 통해 자신의 느낌이나 삶의 방식을 쉼 없이 퍼 나르고 이것으로 타인과 끓임 없이 비교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6,70대 노인층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 Syber Reply Syndrome 자가 진단 방법이 있다.


1, 자신이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가?

2,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3, 사회전반을, 특히 정치이념을 부정적으로 보는가?

4, 본인의 의견이 무시당하거니 반대에 부딪치면 화를  내는 성격인가?

5, 마음에 드는 경향이 있으면 따라 하는 경향이 있는가?

7, 거짓말을 하고도 금방 잊어버린다.

8,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한 경험이 있다.

9,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황스러운 행동을 할 때가 가끔 있다.

10, 성공한 사람이나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따라서 모방하려고 한다.


세 가지 이상이면 요 주의 단계이고

다섯 개를 넘기면 이미 확정된 단계이다.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욕먹지 않는 늙은이로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다. 자중한답시고  침묵으로 대처하며 살아가기는 더욱 힘들다.

어느 유명 신부가  "만약 자신의 훌륭한 부분 즉 신적인 인간정신을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것은 전혀 사는 것이 아니다. 감각들과 몸으로만 살아가는 이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달란트가 있다. 값없이 허공을  떠도는 거짓 정보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리지 말고, 아무것이나 함부로 퍼 나르지도 말고, 부족하더라도 내 생각 내가 만든 것, 내 발로 걸어가는 그곳에 노년기의 남은 열정을  쏟아보면 어떨까?

이 아침,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 노인들에게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조그마한 기대를 한번  걸어 본다.


                2024, 2,17

           "초인류"와

           "25시에서 영원으로 "

            참고하여 부분 인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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