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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떡 Jun 26. 2024

할머니

할머니는 6년 전 4월에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으신지 4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우리집에 오신지도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좁은 집이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머물 방은 딱히 없었고, 거실 한 가운데 이불을 펴고 누워 생활하셨다. 좁은 집에 할머니가 오시게 되어 불편해졌고, 할머니는 그걸 미안해 하셨을 거다. 하지만 곧 우리의 불편함을 눈치채지 못하시게 될 정도로 할머니의 치매는 깊어졌다.


우리집에 오시기 전, 외삼촌 댁에서 지내던 할머니는 요리를 잘 하셨다. 설이나 추석, 외삼촌 집에 갈 때마다 호화로운 반찬을 접하곤 했기에 할머니가 오시면 우리집 반찬이 풍족해질까 내심 기대했다. 집에 오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해 주시던 갈비찜, 미역국 같은 음식은 수제비, 간장국수처럼 쉬운 음식으로 좁혀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설거지도 잊으셨다. 방에서 걸어 나오다 주저앉아 아기처럼 엉엉 우시기도 했고 나를 보고 집에 데려다 달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 하시기도 했다.


혼자 화장실을 가시다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할머니는 더이상 걷는 게 어려워 누워 계셔야 했다. 치매는 점차 심해져 식사를 항상 잊으셨다. 누워있는 할머니를 힘주어 일으켜 앉혀드리고 쟁반에 밥과 국을 챙겨 할머니 앞에 놓아 드린 다음, 잘 드시는지 살피는 것은 집에 있는 사람들의 일이었다. 취업 준비생이던 나는 할머니를 챙기는 걸 귀찮아했지만 할머니와 둘이 집에 있는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기에 은근히 환영하기도 했다.


가끔 할머니 앞에 앉아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처음 스마트폰을 사고 좋아하던 사람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던 날, 가고 싶던 기업에서 불합격 문자를 받은 날, 남자친구가 생긴 날, 싸운 날. 내가 무슨 얘기를 하던 할머니는 투명하고 맑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곤 했다. 내가 무슨 얘기를 쏟아놓던, 할머니는 항상 내 오른쪽 손목의 점을 쓸어 내리며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 태어날 때부터.”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평소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지쳐있었지만 이 말은 들을 때마다 새로웠다. 할머니가 나를 기억 하는구나,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가 나를 기르는 시간을 함께 하셨구나.

한편으론 무서웠다. 오른쪽 손목의 점을 쓸어내리며 이 말을 반복하던 할머니가, 나는 왠지 영원히 계실 것만 같아서 솔직히 두려웠다.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우리집에 오신 후부터 엄마는 직장을 나가면서도 할머니를 성의껏 돌봤다. 다리까지 불편하셔서 거동을 못하시던 할머니는 기저귀를 차고 샤워도 하지 못한 채 누워만 계셨지만, 엄마는 일정 시간을 지켜 기저귀를 항상 갈아드리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꼼꼼히 닦았다. 혹여나 욕창이 생길까 왼쪽 오른쪽 할머니의 몸을 움직여 드리곤 했다.


할머니가 엄마의 말을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어어 그랬어 엄마, 하면서 항상 귀를 기울였다. 가끔, 아주 가끔 할머니가 정신이 온전해질 때마다 TV 소리를 줄이고 할머니가 내놓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가난과 질병으로 태어난지 삼 년 만에 죽었다는 할머니의 첫 딸, 남편 없이 네 형제를 키우며 도둑으로 몰렸던 묵혀둔 이야기.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내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반복되는 단어를 말하기에 그쳤다.


오빠만 둘, 남동생 하나. 외동딸이던 엄마는 할머니의 제일 좋은 친구이자 하소연을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곱고 착해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던 할머니를 답답해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워하던 사람은 엄마였다. 그래서 엄마는 요양원에 모시자는 삼촌들과 싸웠고 할머니를 불편해하는 나와도 싸웠다. 그런 일을 겪어내는 와중에 엄마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이유는 쉬웠다. 할머니랑 함께 살 수 있어서 엄마는 너무 행복했다.


엄마를 가장 약하게 만드는 존재는 할머니였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가장 크게 무너졌던 엄마에게 <밝은 밤>의 한 구절을 읽어주고 싶다. '다음 생에선 네 딸로 태어날 테니. 네 딸로 다시 태어나서 에미일 때 못다 해준 걸 마저 해줄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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