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떡 Jun 26. 2024

혜지야, 결혼을 축하해.

혜지야, 결혼을 축하해. 어떤 얘기를 뒤이어 꺼내든 이 말을 가장 먼저 해주고 싶었어. 사실 나는 너와 '결혼'이라는 단어를 연결짓는게 아직도 어색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도 들어. 결혼식 날, 나만을 위한 축제가 한창인 기분에 온종일 싱글벙글 웃었던 나였는데 너가 내게 편지를 읽어주는 순간만큼은 눈물이 빵 터질 것 같았어. 꾹 누르기만 해도 눈물이 터지는 버튼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있다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텐 너가 가장 큰 눈물버튼이야.


'이웃집 토토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 생각이 나. 처음엔 토토로가 귀엽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다시 보니까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가우리 같아서 다시 눈물이 빵 터질 것 같았어.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좋은 사람이던 그 때가 모락모락 기억나더라. 기억나? 아파트 옆 단지 친구네 집에 함께 놀러간 날 내가 친구와 얼굴을 쥐어뜯고 싸울 때, 너도 덩달아 달려들어 내 얼굴에 붙어있던 친구의 손을 힘겹게 떼어냈잖아. 자신있는 척 줄넘기를 하다 넘어져 내가 발목을 붙잡고 울먹이고 있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집으로 뛰어가 엄마를 손을 붙잡고 달려오던 것도 너였어. god에게 보낼 학 천 마리를 같이 접어준 것도, 팬레터를 엄마 몰래 함께 숨겨준 것도, 공개방송에 간 걸 뻔히 알면서 학원에 갔다고 함께 거짓말해 줘서 고마워.


물론 미안한 기억도 많아. 기억나? 넌 초등학교 1학년,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엄마가 출근한 빈 집에 혼자 가기 싫던 너가 3학년 5반 우리 교실 앞에서 서성거렸어. 나는 너를 교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내 무릎 위에 앉히고 수업을 들었어. 친구들 앞에선 언니인 척 의엿한 척 널 챙겼는데, 집에 와선 엄마에게 너가 우리 교실로 들어와 날 방해했다고 일러바쳤지. 엄마에게 혼나는 널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속으로 미안했었는데 이제서야 사과하네. 비겁했던 날 용서해.

여섯 살과 다섯 살, 앞뒤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씽 달려 내려가다 앞으로 고꾸라져 너의 이마와 무릎에 난 상처도 미안해. 내가 아끼는 책에 낙서했다고 며칠 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미안하다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서 미안해. 너가 아껴입던 니트를 몰래 훔쳐입고 나간 날, 하필 소매가 김치찌개에 풍덩 닿아서 그 니트는 결국 버려졌지. 옷을 망쳐놓고도 시큰둥하게 있어서 미안해.


학 천 마리를 몰래 접던 나는 이제 서른 다섯이 되었어. 어른이 될 수록 너가 좋아져서 큰일이야. 내 밑바닥을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치졸한 고민과 부끄러운 슬픔을 쏟아내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젠 너 밖에 없다고 믿어. 그만큼 너가 나를 더 크게 끌어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자란거겠지?언제가부터 내 눈물버튼이 된 너에게, 내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줘도 아깝지 않을만큼 너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너의 결혼이 어색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갑자기 소개팅을 한다고 말하던 날, 그 사람을 세 번째 만난다고 말하던 날, 사귀자는 말을 들었다는 날, 그리고 남자친구의 팔짱을 껴고 싱글벙글 웃으며 부모님 앞에 나타나던 날, 나는 너가 정말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너를 가장 크게 끌어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안심이야.


혜지야, 결혼을 축하해.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야.

언니가.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