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주는 확장성 - 음식
D + 598, Jeddah
얼마 전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카톡으로 긴 대화를 나누던 중 "취향"이라는 것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내 “취향”이 뭔지 묻는데, 뭐라 대답해야 될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 긴 대화 속 그 사람은 본인에 대해서 무지막지하게 이야기를 쏟아낸다. 나는 경청의 자세로 듣고 공감하고 질문한다. 내가 듣는 자의 입장인 것은, 1, 듣는 게 좋아서인지/ 2, 나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인지/ 3, 아니면 내 말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지. 3번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본인의 취향이 확실하고 뚜렷한 사람은 삶의 대한 애착이 강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인지하든 하지 못하든 크루즈를 내린 2017년부터 참 오랫동안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고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사우디에 와서 조금 더 몸과 마음이 시들시들 해진 건 있지만 이미 한국에서부터 시들시들했을지도…
답답할 땐 술 한잔 마시고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긴 어둠 속에서 은둔자처럼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아까운데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시간 안에서 난 최선을 다했으리라.
그리고 요즘 아주 오랜만에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고, 내 삶에 다시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한 거 같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 취향은 어떤 것들인지 알아가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그동안 나를 관찰해 본 결과, 지금 사우디라는 엄청나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건 큰 경험과 새로운 시도이다. (이건 스스로 인정). 이렇게 굵직한 큰 움직임들은 경험상 잘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보통의 날들에서는 익숙하게 접해온 것들로 채워진다. 나는 꽤 오픈적이고 유연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생활면에서는 보수적인 면이 아주 많은 거 같다. 먹는 것, 입는 스타일, 좋아하는 사람 등등!! 일단 새로운 건 나도 모르게 손이 안 간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고수하되, 그 취향이라는 게 내가 접해본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것이 내 취향이 된 건지 아니면 여러 가지 다 경험을 다 해보고 그것이 내 취향이 된 건지는 다른 거 같다. 오랫동안 자리 잡은 저 생활형 취향 때문에 다른 새로운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그런데 맥주도 나의 생활형 취향인 거 같다. 와인, 위스키, 보드카 등등 여러 술을 마셔보고 맥주가 나의 최애가 된 건지, 아니면 마셔본 게 맥주 밖에 없어서 제일 익숙해서 나의 최애가 된 건지. 후자이다.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맥주의 편안함이 좋다.
일단 최근에 시도한 음식에 관한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들에서 반전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헝거스테이션의 주문목록을 봤다. 거의 다 밥과 국물이 있는 초밥이나 타이 음식. 내가 커온 환경에서는 밥이 주식이고, 개인적으로 뜨거운 국물을 좋아한다.
*헝거스테이션: 우리나라의 배달의 민족 같은 어플
그래서 최근에 새로이 접한 것이, 예전 같으면 절대 보고도 들어가지 않을 예멘 음식점, 레바니즈 음식점 그리고 쉨쉨버거(SHAKE SHAKE BURGER)
뚝배기 안에 새우가 들어있고 (정말 뜨거우니 입천장 조심), 옆에 “난” 같은 것을 손으로 뜯어서 뚝배기 안의 내용물과 함께 먹으면 된다. 사우디에 와서 웬만한 고기에서는 누린내가 나는 거 같아 아예 고기가 들은 음식들은 시도를 안 하는데 다음에는 고기가 들은 뚝배기도 시도해 봐야겠다.
예멘 커피도 그렇게 향이 좋다고 그런다. 다만 찐 예멘 커피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함정.
항상 몰에 가면 이 앞을 지나가기만 했지 직접 들어가지 않았다. 익숙함을 찾아 초밥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 앞에서 때마침 들어오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이끌려 들어가서 주문을 한다. Smoked beef burger 그리고 밀크 셰이크
어디서 본건 있어서 밀크셰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어보고 싶었다. 환상적인 버거맛은 못 느꼈고, 내겐 그냥 버거. 이것도 Nice Try
레바니즈 음식이라기 보단 중동국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Mixed Grill.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에 불향이 짙게 배인 그릴 음식이다. 여기서 꽤 좋았던 시도는 다른 꼬치고기들은 큰 감흥이 없었다만 한 덩이의 양고기 스테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제대로 된 양고기 스테이크 집에서 먹는다면 충분히 앞으로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함께 추천받은 무슨무슨 베리 모히또, 색깔부터 인위적이라 마음에 안 들었으나 새롭게 시도한 것에 의미를 두고..ㅋ)
내 취향 발견을 위한 노력은 내 보통의 날들을 조금 더 다채롭게 채워주는 거 같다.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취향 발견을 꾸준히 해야겠다.
* 사우디 2년 살이 결과, 뜨거운 이 아랍국은 나와 잘 맞지 않는 거 같다. l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