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뭐 천년만년 산다고…
조정래 작가님의 [한강]은 내가 태어나기 전 1960-1980년 한국의 이야기이다. 10권의 책 안에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가 있다. 지금 사우디에 있다 보니, 책 후반에 나오는 ‘문태복‘의 사우디 이야기가 흥미롭다.
문태복은 황동일을 월남에서 만났다. 그들은 총알 피해가며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차의 운전수였다. 문태복은 돈 벌러 월남에 갔으나 화투에 빠져 힘들게 번 돈을 다 잃고 한국에 오게 된다. 그러다 중동바람이 불게 된다. 사우디 1년 갔다 오면 택시 한 대 사서 사장이 될 수 있다고 문태복이 황동일을 꼬신다. 그러나 황동일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거절한다.
여자도 상대할 수 없고, 술도 마실 수 없는 그따위 멋대가리 없는 나라에 가게, 너나 가서 더위에 푹푹 썩으며 돈 많이 벌어라. 사람이 뭐 천년만년 산다고….
7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황동일 씨!
이렇게 현명할 수가 있나!!!!
사우디 생활 3년째 접어드는 나에게 감정이입 100프로 되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생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자유 다 버리고 3년째 사우디에 묶여 있는 나. omg
돈이 뭐라고 ㅠ
그리고 그는 “그저 적게 먹고 가는 똥 싸기로 했어.”
이 역시 와닿네!
한국에서보다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이 멀리 와서..
나도 욕심이다.
그렇게 현명한 황동일은 사우디에 오지 않고, 문태복만 오게 된다. 그때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동부해안도시 다란에서 리야드를 거쳐 서부해안도시 젯다(현재 내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도로를 닦는 일이었다.
몇 주 전 일 때문에 알코바르라는 도시를 다녀왔다. 젯다에서 알코바르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렸다. 알코바르가 동부해안도시 다란이 있는 그쪽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그들이 머릿속에 스쳐가고, 도로의 아스팔트를 보게 된다. 어쩌면 그때 우리나라사람들이 힘들게 닦아놓은 길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슴웅장해진다.
지금 나도 여기에서 이렇게 힘든데, 과거의 그들은 이 날씨에 어떻게 견뎠나 싶다. 진심 존경스럽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을 잘해서 “꾸리(한국사람)“라고 하면 어디서든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우디 근처의 중동국가들이 우리나라에게 공사를 맡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개고생 한 문태복은 요로결석이 걸려 한국으로 돌아간다. 다시 한번 황동일이 현명했다. ㅋ
현재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생활하다 보니 나는 이곳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일처리는 왜 저리 느리나, 인샬라라 얼버무리지 말고 대답을 확실히 해라, 날씨는 왜 이리 덥나, 마실 놈들은 뒤에서 몰래 다 마시면서 술은 왜 금지인가, 등등등 불만이 많다.
나의 시선과는 다르게, 조정래 작가님이 이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긍정적이다. 사람에 따라 똑같은 걸 두고 어떤 경험을 하냐에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나도 여기를 떠나면 이곳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욕심 덜 부리고 자유를 찾아 얼른 떠나자.
기승전 사우디탈출이 과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