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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화 Jun 29. 2023

민서엄마 은영

은영은 평화로운 일상이 견디기 어려웠다.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마치 전장에 홀로 남겨진 마지막 전사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동료들만 전투지로 보내고 홀로 막사에 남겨진 패잔병이 된 기분이랄까. 

집은 실로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식탁 위엔 아이가 먹다 남긴 밥그릇과 너저분하게 흩어진 밥풀들, 티비에선 EBS에서 방영되는 아이들 방송이 시끄럽게 귀를 때리고 거실에는 아이 머리를 묶느라 들고갔던 빗과 머리끈 들이 자기를 구제해줄 손길을 기다리며 아이와 은영이 앉았던 자리를 주변으로 마치 경계를 만들듯 늘어뜨려져 있다. 안방 침대위는 이불들이 한데 엉켜 동굴이 생겨있고 화장실엔 여기 저기 튄 물들과 남편이 벗어놓은 바지가 바닥에 흥건하다.(도대체 왜 입고 있던 바지를 변기 위에 혹은 화장실 바닥에 두는건지 은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 남편과 아이는 각기 자신만의 전투를 치르러 떠났다.

'나 혼자다' 은영은 유튜브에서 국내외 사건사고들과 정치사들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유투버의 방송을 틀고 보기 시작한다. 은영은 원래부터 국제정사에 관심이 있었다. 그랬기에 전공도 국제학과를 간거겠지.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고 가정주부로서 역할을 맡기 시작하면서 은영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달러환율을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러시아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어디까지 진행됬는지, 유럽에선 난민들이 어떻게 망명생활을 해나가고 있는지 이런 기사들이 유투브 피드에 계속해서 올라왔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온한 생활이 자신에겐 맞지 않는다고 느낀걸까. 그래서 계속해서 살인과 강도, 사기와 전쟁과 같은 기사들만 찾아보고 있는걸까. 내 삶엔 뭐가 없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남편은 회사에서 매일 업무와 사람들에 치여가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아이는 유치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선생님과 어울려 놀며 매일 매일 새롭고 즐거운 기억과 지식과 의미들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은영은 그 어디에도 소속되거나 의미있는 관계가 없다고 느꼈다. 


은영은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길 즐겨했다. 남들에게 뭔가 바쁘고 뭔가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게 기뻤고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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