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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faitement imparfaite Jul 24. 2020

얘 슈가-r 좀 줘봐!

울 엄마의 고운말 우리말

나의 친애하는 모친 석 모 여사(용띠, 1인 회사의 ceo)는 목소리 크기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랑스런 대한민국 아줌마로, 특기는 외국인에게 무조건 한국말로 말 걸기이다. 한국 안팎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단은 본인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자랑스런 모국어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며, 원래도 목청이 크면서 외국인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봐 더 크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한국말로 말하면 또 세계 어디에서든 대충 다들 알아듣는 것 같긴 하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1. 고등학교 때 잠깐 시험준비를 하느라 프랑스어 원어민에게 과외를 받은 적이 있는데, 빵과 시럽을 간식으로 내어주면서 선생님 앞에서 빵 위에 시럽을 휘휘 뿌리는 시늉까지 해가며 "이렇게!! 이.렇.게. 뿌.려.서. 먹.는.거.에.요!!"를 외친다. 가엾은 프랑스 선생은 엄마가 자신에게 갑자기 뭐가 화가 난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색이 되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이 사람이 외국인이지 바보는 아니야 우리보다 빵먹는 방법은 잘 알거야 제발 그만해...


#2. 일본 여행을 가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내리느라 "실례합니다!!!"를 외치면서 마지막 내릴 때는 버스 기사님께 "고생하쎄요~~~!!"를 잊지 않는다. 그들도 대충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진 알았겠지. 봐라, 이 분이 바로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아줌마다!


#3. 프랑스 파리의 한 백화점. 엄마는 할인하는 스카프를 몇개 사겠다고 하길래 (이쯤되면 계산은 알아서 한국말로 척척) 난 멀찌감치 떨어져 영혼없는 아이쇼핑 중이었다. 어디선가 다급하게 울려퍼지는 "OO야!!!!어머 OO야!!!(내이름)"를 듣고 시비라도 붙었나 싶어 헐레벌떡 소리를 따라 매장으로 갔다. 엄마는 왜 지금까지 멀쩡히 써온 카드가 결제가 안되는지 직원을 붙잡고 각자의 언어로 토론 중이었다.

엄마: "아니 이거 되는 카든데 왜 그러죠?이렇게 이렇게!!"

직원: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 "일시불인가요 할부인가요 마담......"

 

#4. 제발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져서 "내가 돈 내줄게 마사지 한번 받아!"하고 파리의 타이 마사지샵에 엄마를 밀어넣는다. 이렇게 나체로 받는 마사지는 처음이라며 "어머 그냥 안할래!못해! 너 없으면 나 혼자 어떻게 해!"를 연발하는 엄마를 무시하고 그냥 인정사정없이 문을 나서는 순간, 혹시나 싶어 돌아보니 역시나. 숍에서 제공한 팬티를 들고 태국 아줌마와 또 자연스레 대화 중이다. "이걸 입으라고요? 다 벗고?어머~~"


큰맘 먹고 엄마와 막내동생을 데리고 떠난 가족 유럽여행. 핀란드 헬싱키에서 이틀, 프랑스 파리에서 5일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장난삼아 몇번 봉주르!한 것 외에는 일주일 내내 한국어로 모든 당신의 용무를 해결했다. 어차피 안되면 그냥 내 이름을 외치면 어디선가 지친 내가 달려와 해결해 줄 것이니...


그러고 나서 통역하랴 인간 내비게이션 하랴, 앞으론 돈 많이 벌어서 그냥 패키지 보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 또 다짐하며 파김치가 된 심신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말없이 기내식을 열심히 먹던 엄마가 갑자기 주섬주섬거리더니 말한다.


엄마: "얘, 그 슈가-r 좀 줘봐."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주일 내내 영어 한마디 안쓰다가 갑자기 왠 슈가-r야!!!!"


엄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 몰라 야 설탕이라는 단어가 기억이 안났어 갑자기!!"


나: "기억잌ㅋㅋㅋ안났댘ㅋㅋㅋㅋ이제 한국가면 교포 코스프레 하는거 아냐 어륀지 주세요 이러면서??"


엄마: "그러니까! 파리에 적응해버렸나봐~~~깔깔깔깔"


아무튼 엄마는 여전히 파리앓이 중이고 다음 여행은 스페인으로 가자는 엄마의 한국말은 온세상에서 나만 못알아들은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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