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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faitement imparfaite Jul 27. 2020

자본주의의 달콤함

이 정도면 살짝 성공한 느낌적인 느낌?

내 명의로 된 집도 차도 없는 2년 차 직장인이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고 나니 가끔 이런 게 돈 버는 맛이지, 이런 게 살짝 아주 사아아알짝 성공한 기분인 것 같아, 싶을 때가 있다. 나의 개인적인 달콤한 모멘트들을 소개한다.


1. 닭가슴살 아무거나 낱.개.로. 주문하기

대학생 때 트레이너 알바를 할 때는 다이어트는 해야겠고, 돈과 시간은 없어서 덩어리당 단가가 제일 낮은 IFF?올품 냉동 생 닭가슴살 1kg을 사서, 전기밥솥에 물만 살짝 넣고 취사를 눌러서 쪄먹었다. 그렇게 해서 락앤락에 싸다녔는데, 정말 퍽퍽하고 닭비린내가 진동했다. 뚜껑을 여는 순간 훅하고 코를 마비시키는 닭비린내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은? 닭가슴살을 그렇게 매 끼니 먹지도 않고, 냉장고가 작기 때문에, 그냥 맛있는 닭가슴살을 조금씩 사 먹는다! 닭가슴살 큐브, 닭가슴살 소시지, 한입 크기 닭가슴살, 스테이크형 닭가슴살 등 요샌 정말 맛있는 게 많이 나오는데, 그중 먹어보고 싶은 걸 낱.개.로(덩어리당 단가?계산하기 귀.찮.다.) 3개 정도씩만 주문한다. 한 종류씩 닭가슴살 팩을 뜯어 맛볼 때면 꽤나 호사를 누리는 기분!!


2. 혼자 집에서 소고기 구워 먹을 때!

어릴 때 가족 외식은 입이 많으니 당연히 주로 돼지고기였고, 친구들과도 소고기를 먹을 일은 흔치 않으니 소고기 맛을 잘 몰랐다. 그러다가 소고기 맛에 눈뜨게 된 건 20대 중반 정도인데, 취업 전엔 꿈도 못 꾸다가 요새는 가끔 주말을 위해 소고기를 미리부터 사놓는다. 물론 아직 한우 레벨은  아니다. 250g에 만 오천 원을 넘지 않는 호주산 또는 미국산 소고기다. 주말 아점으로 혼자 소고기를 구워 먹을 때, (회식 따위가 아니어도 혼자 먹는다는 게 포인트) 지친 나의 한 주를 위로하는 육즙이 입안에서 팡팡 터지고 든든한 포만감에 기운이 절로 날 때, 왠지 조금 아주 조금 성공한 도시 여자가 된 기분.


3. 잔액 계산 안 하고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때

궁상맞아 보이지만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거다. ATM에서 통장 잔액을 확인했는데 1800원밖에 남지 않았을 때의 아득함을 아십니까? 가진 건 티머니밖에 없는데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서 동전을 찾아봐도 900원밖에 없을 때의 서러움을 아십니까? 밖에서 누구와 비싼 밥을 먹게 될 때 이거 더치페이할 돈 빼고 나면 앞으로 돈이 얼마 남고 거기서 교통비 얼마 빼면 얼마가 남을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지금도 만약 내가 한우 오마카세나 미슐랭 3스타 정도를 먹는다면 밥 먹으면서 계산을 좀 해봐야겠지만, 웬만한 건 계산 때리지 않고 편하게 사 먹을 수 있고 빵집에서 아무 빵이나 미리 암산으로 계산 안 하고 골라 담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크고 확실한 행복인지!! 여기에 화룡정점은, 최종 금액을 굳이 새겨듣지 않는 쿨함이다. (물론 이미 3만 원이 안 넘는다는 걸 알고 있다 ㅋㅋ)


4. 고민하지 않고 3겹짜리 소프트 화장주문할 때

아!화장지를 주문할때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제일 싸지만 거칠고 잘 찢어지는 얇은 화장지를 살것인지, 가격은 2배가 넘지만 무려 3겹이나 되는 도톰하고 나의 피부(?)를 확실하게 보호해줄 것 같은 고오급 화장지를 살 것인지. 마음은 개운하고 보송한 마무리를 위해 화장지만큼은 좋은 걸 사야한다고 외쳤지만 머리는 또 텅장 잔액을 계산하며 제일 싼 하타취 휴지를 주문했던 나의 거칠고 따가웠던(ㅋ) 20대. 이제 안녕.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도 삶의 만족감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안정적인 월급이 들어온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니 멘탈도 안정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훨씬 삶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돈만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너무 쉽게 불행해질 수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고, 눈만 감았다 뜨면 오르는 서울 집값을 생각하면 난 어떻게 내 집을 사나 막막하지만, 고생하던 20대를 거쳐 최소한 내 인생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안심하면서, 40대가 된 나를 기대해는 것이다.


- 이 긍정적이고 희망찬 글은 월급날 작성된 것으로, 학자금 대출 상환액과 각종 공과금 및 월세 등이 빠져나가고 난 이후의 현재 글쓴이의 심경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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