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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faitement imparfaite Aug 01. 2020

교동의 킬링필드와 동학개미학살

그들의 복수가 시작됐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신 탓에 외가댁에서 보낸 나의 유년시절은 대체적으로 따분하고 무료한 시간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드라마틱한 이벤트는 주기적으로 있었으니, 바로 집개미 소탕 작전.


할아버지가 아침에 별안간 쥐포를 꺼내면, 이것이 바로 디데이를 알리는 신호이다. 개미들이 주로 다니는 동선을 평소 파악하고 있다가, 적당한 구석에 쥐포를 한 조각 뜯어 놓는 것으로 작전 개시. 그리고 나도 한 조각 먹고, 할아버지도 한 조각. 난 한 조각 더. 아니 그냥 남은 거 저 다  주세요!


할아버지는 사령관으로써 오전의 역할을 다했고, 이제부터는 나의 몫이다. 브레인이자 정찰병이다. 개미가 충분히 모일 때까지 쥐포를 관찰하고 있어야 한다. 처음엔 지나가던 작고 귀여운 집개미 한 마리가 쥐포를 발견한다. 동족의 며칠 치 일용한 양식 거리를 발견한 개미는 집에 돌아가 의기양양하게 외치리라. "내가 노다지를 발견했으니 나를 따르라!!"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개미가 떼로 몰려오기 시작하면, 내가 행동을 개시할 때다. 적당한 타이밍을 보아, 사령관을 찾으러 헐레벌떡 찍찍이 샌들을 구겨신고 집 밖을 뛰쳐나간다. 온 동네를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며 애타게 사령관을 찾아보지만 대충 어디 있는지는 사실 알고 있다. 동네 할아버지들의 핫스팟, 노상 테이블.


멀리서 사령관의 실루엣이 보이면 그때부터 목청껏 외쳐야 한다. "할아버지이이이이!!!할아버지이이!!개미 모였어요!!!!" 사령관은 그게 무엇이든, 하던 대화를 단번에 멈추고 일어선다. 이 작전의 핵심은 타이밍이기 때문에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다. 쥐포가 너무 작아지면, 개미 떼의 수도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작전에서 브레인을 담당하는 이유가 바로 개미떼가 최대로 몰려오는 타이밍을 잘 캐치하기 때문이다. 물론, 할아버지를 데리고 오는 시간까지 염두에 두고 계산한 것이다!


그렇게 사령관과 그의 오른팔이 현장에 도착하면, 못해도 수백에서 천마리는 넘어 보이는 개미떼가 바글바글 쥐포를 덮고 있으며, 쥐포를 이고 가는 개미떼의 행렬이 마치 일사불란한 군대를 보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파티는 끝났다. 에프킬라를 사정없이 뿌려 학살을 시작하는 사령관 옆에서 난 또 남은 쥐포를 뜯어먹으며, 저녁으로 먹으려던 쥐포를 꼭 안고 잠에 드는(?) 개미떼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훗날 혹자는(나ㅋㅋ) 이 참혹한 대학살을 두고 <교동의 킬링필드>라 하였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으니 재테크를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던 차에, 나도 동학개미운동에 뒤늦게 합류하게 된 지 어언 몇 달이 흘렀다.


처음에 13만 원으로 시작했던 주식은 지금 약 300만 원까지 불어났다. 그래, 수익으로 불어난 게 아니라 그냥 예수금을 계속 넣었다. 물 타기 한 거라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과거의 브레인으로써 조금 쪽팔리니까.


초심자의 행운이었는지,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건드리는 종목마다 별안간 호재가 터지는 걸 보고 꼴랑 1주 사놓은 것을 애석해하며 땅을 쳤다. 내가 바로 시드머니 없는 워렌 버핏이었노라고..


그러다가 점점 간이 커져서 베팅 아니 투자하는 원금을 늘려가고, 데이 트레이딩으로 상한가 따라잡기 놀이에 맛들리기에 이른다. 상한가 치는 종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살짝 내려왔을 때 다시 사고 올라갔을 때 팔고를 반복하면 꽤나 실력 있는 단타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물렸다. 약 80만 원 정도씩 넣은 3 종목을 상당히 고점에서 물려버렸다. 물론 더 큰 규모로 주식하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내게 그 정도가 물려있는 것은 현금 유동성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다. 더 이상은 안 떨어지겠지, 했지만 바닥 밑에 지하가 있고 지하 밑에 맨틀 있다는 도시괴담은 정말이지 사실이었다.


'월급만 가지고는 못 살아~직장인이 주식으로 돈 벌려면 단타를 해야 한대~'라며 의기양양하게 주변에 주식을 권하고 다녔던 나란 개미는 이제 풀이 잔뜩 죽어서 '워렌 버핏 이름이 사실 존버핏이라더라. 난 가치 투자 중이다.'따위의 말을 힘없이 중얼거릴 뿐이다.


외국인과 기관이 공매도로 개미들을 털어낼 때마다, 한때 연속 상한가를 치던 주가가 사정없이 떨어질 때마다, 에프킬라를 들고 귀여운 집개미들을 학살하던 할아버지의 결연한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오래전 무참히 학살당한 개미들의 원한이 이제 와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닐까.

(신비한 TV 써프라이즈 스타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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