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의 옹호와 현상 유지 또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위의 정의를 감안하면, 나의 성향은 전통이건 뭐건 일단 이전 것을 현상 유지하려는 수구에 가깝다. 길도 다니던 길로만 다니고, 내가 모르는 동네에 이사를 가는 건 상상할 수도 없으며 생소한 동네에서 약속만 있어도 피로가 몰려온다. 하다못해 시험 준비를 할 때도 인강 강사가 영 별로여도 일단은 처음에 선택한 한 명으로 끝까지밀어붙인다(못 붙어도 고!).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람에 적응하기가 귀찮은 게으름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싶은데, 그렇다기엔 새로운 일은 쉽게 쉽게 잘도 벌린다. 격변의 시대 속 마지막 아날로그 감성을 기억하는 90년생으로써, 밀려오는 신문물을 외면하고 척화파의 자존심을 지키기란 여간 녹록지 않은 일이 아니다.
# 롤리팝 -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나서부터 서서히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난 당시 전화가 오면 바깥 액정에 사람별로 지정한 led그림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롤리팝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롤리팝은 참 잘 만든 핸드폰이다. 난 롤리팝이 너무 마음에 쏙 든 나머지 스마트폰이고 뭐고 롤리팝을 몇 개 쟁여놓고 죽을 때까지 롤리팝만 쓰겠다고 충성을 다짐했었다. 학교 팀플에서 카톡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소외되기 전까지는 ㅠㅠ.
"대체 폰으로 인터넷을 왜 해야 해? 난 인터넷은 그냥 컴퓨터로 하고 폰은 문자만 하는 게 좋아! 롤리팝이 최고야!"라며 시대의 흐름에 저항해보려 애썼지만 학점 앞에 장사 없다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첫 스마트폰을 개통하게 된다. 난 아직도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하트가 뿅뿅 뜨고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기린 그림이 나오던 롤리팝의 led가 그립다.
# 애플 아이팟 - 고등학교 때 세뱃돈 등을 모아 처음으로 고가의 물품을 지른 것이 바로 아이팟 나노 2세대. 아이팟 역시 지금 봐도 쌔끈한 디자인에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다. 나의 사춘기 갬성을 음악으로 채워주던 아이팟 역시 롤리팝과 함께 내 평생 함께할 줄 알았다.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굳이 아이팟을 따로 들고 다니기를 고집하던 내가, 계단에서 한번 우당탕탕 떨어뜨리고 나서 맛이 가버린 아이팟을 다시 살 수가 없어서 결국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꼴사나운 트렌드에 합류하게 되고 말았다. 지금은 어떻게 주머니에 한쪽은 mp3, 한쪽은 핸드폰을 넣고 다녔는지,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을 땐 어떻게 2개의 디바이스를 들고 다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mp3를 쥐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던가? 아마 그때는 카톡이 없던 시절이니 핸드폰을 시종일관 손에 쥐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수도 있다.
아 전화는 폰으로, 음악은 mp3로, 공부는 전자사전으로 분업화되어있던 비효율적인 시절.. 왜인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아이팟은 여전히 내 서랍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 줄 이어폰 - 예전에 남자친구가 같이 산책을 하던 중 내가 듣는 9000원짜리 싸구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보고는, 지금까지 이런 음질로 음악을 들었다니 애석하다며 선물해준 보스 이어폰은 몇 년째 나와 거의 한 몸으로 다니는 필수템이다.
나의 막귀에 처음으로 부드럽고 웅장한 베이스 소리를 들려준 이 이어폰을 얼마 전 잠시 잃어버렸는데, 주변에서 하도 버즈가 좋다더라 에어팟이 좋다더라 하니 잠시 갈등이 되었다. 아무래도 똑같은 걸 몇 년 전과 같은 가격으로 사기는 좀 아깝기도 하고, 출퇴근길에 매번 엉킨 이어폰 줄을 푸는 것도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던 탓에 나도 이참에 은근슬쩍 무선 이어폰으로 갈아타 볼까 내심 고민되어 장바구니에 갤럭시 버즈를 담아만 놓고 망설이던 중이었다.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을 때 귀가 녹아내리는 것 같던 느낌을 선사해준 보스 이어폰을 또 제값을 주고 다시 사느냐. 아니면 내가 비웃었던 자들과 똑같이 나도 무선 이어폰을 꽂고 허공에 혼잣말을 하듯 핸즈프리 통화를 즐길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어폰은 나의 보조가방 구석탱이에 숨어있었고, 바람을 피우려다가 들킨 사람 마냥 괜히 나의 최애 이어폰한테 미안해진 마음에, 앞으로는 평생 이 줄이어폰을 쓰리라 괜히 다짐해보게 되었다. 물론 언젠가 고장 나면 롤리팝 꼴이 나겠지.
# 종이책 - 그 무엇보다도 끝까지 지켜온 나의 자존심, 종이책. 내가 바로 독서계의 흥선대원군이었다. "책은 종이로 봐야지, 화면으로 보면 집중도 안되고 넘기는 맛이 없잖아!!"라며 끝까지 읽고 싶은 책은 기어이 종이책으로 소장해야 직성이 풀렸다. 책장에 새 책들을 깔맞춤하여 꽂아놓고 흐뭇하게 겉표지를 쓰다듬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
지금 사는 집 책장이 꽉 차기도 하고, 해외 발령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더 이상 책을 사모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매번 이 책들을 전세계로 이고 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외에 나가면 어차피 한국 책을 살 수도 없으니 나도 e북이란 것에 적응을 해봐야겠군' 싶어진 것이다.
처음엔 소프트랜딩을 위해 크레마를 질렀다. 핸드폰에 비하면 훨씬 종이책 같은 느낌을 준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화면은 종이책 질감을 잘 구현했지만, 크레마로 책 보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서점 어플도 따로 다운받아서 저장해야 하고, 책은 집에서 와이파이가 될 때 미리 다운받지 않으면 못 보고, 반응 속도도 너무 느리고 방전도 쉽게 된다.
크레마에 책을 다운받으려면 핸드폰 어플에서 책을 먼저 구매 또는 대출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핸드폰으로도 e북을 조금씩 보게 되었고, 결국 종이책 선호라는 나의 알량한 보수주의는 그냥 누워서 e북을 폰으로 보는 게 상당히 편하다는 걸 깨닫고 산산이 부서졌다. 눈이 좀 침침하긴 하지만 어차피 눈은 늘 침침하다. 옆으로 누워서 검지 손가락만 휙휙 움직이면서 책을 볼 수 있다니! 직장인은 가능하면 1분 1초라도 더 누워있어야 한다. 늙고 지친 30대에게 하찮은 아날로그 감성 따위는 육체의 안락함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편리함 앞에 속수무책으로 사라지는 나의 아날로그 갬성들.. 사실 믹스테이프나 lp판, 삐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아날로그라 볼 수 있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얼리 어답터도 못 되고 골수척화파도 되지 못하여 매번 뒷북만 치는 것이, 낀 세대라 불리는 90년생의 숙명이 아닐까.(나만 그런 거면 말고ㅋㅋ) 컴퓨터 못 다루는 엄마를 대놓고 웃음거리로 삼던 내가 "요새 애들은 핸드폰으로 시간 표시된 것만 보느라 시계 볼 줄도 모른다며?" 하며 짐짓 혀를 차면서 친구의 무선 이어폰을 슬쩍 귀에 껴보고 입맛만 다시는 꼴이라니. 정말 세월이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