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faitement imparfaite Aug 31. 2020

YOLO도 FIRE도 못 하는 YORE족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인생 한 번뿐이라며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YOLO가 그렇게 대세이더니, 또 그 조금 뒤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가 심심찮게 부각되며 양극단에서 공존하고 있다. FIRE족은 고소득 고학력을 바탕으로 조기은퇴를 위한 경제적 자유를 얻기위해 현재의 소비를 극단적으로 최소화하면서 악착같이 저축과 재테크를 하며 미래의 행복에 투자한다고 한다.


욜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욜로 때문에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도 상당히 트렌드인 것 같은데,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여행과 휴식을 통해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뭐 여행가서 자아발견, 새로운 동기부여 따위 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그냥 가서 낯선 세상을 마주하고 하루라도 더 행복했으면 그걸로 된 거지.


난 늘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장 오늘 하루 비생산적이고 보람없는 일에 매여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과로사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쓰러지는 순간에 생각을 딱 30초 할 수 있다면, '아 어제 야근을 해서 이 보고서를 마무리 지었어야 하는데..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하고 시간을 더 보낼걸, 조금 더 즐기면서 살걸, 건강할 때 여행 한 번 다녀올걸, 이런 생각을 하겠지.


그런 면에서, 건강하고 돈도 있을 때, 과감하게 떠나시는 분들의 선택이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나중에 하다보면 결국은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가 좀 많은가. 도 그래서 작년에 모은 돈으로 엄마랑 여행을 가서 미슐랭 레스토랑도 가고 쇼핑도 하면서 대탕진잼을 누렸는데, 전혀 후회는 없다.


마음으론 렇게 욜로에 동조하지만서도, 나는 인정욕과 일 욕심이 많아서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어기 때문에 퇴사는 절대 못할거다. 물론 내게 과로사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 적은 없지만 아마 나 같은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에게 적절한 칭찬과 보상만 주어지면 아마 나도 그렇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 물론 지금은 적절한 칭찬과 보상이 없어서 칼퇴를 지향하고 있지만.ㅋㅋ


그리고 지금 직장을 때려치면 취업도 간신히 했는데 이직은 또 어떻게 하나. 가끔씩 그냥 확 때려치고 보라보라 섬에 가서 프랑스계 리조트에서 일하면서 맨날 에메랄드색 바다에서 스노클링이나 하고, 일 끝나면 모히토나 한 잔 하면서 몇 년 있어볼까 하는 상상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 질려서 돌아오면 어디에서 날 받아주겠으며, 서울에 내 집 하나 없이 떻게 먹고 사나. 노후는 또 어쩌고!!


물론 꼭 퇴사하고 불나방처럼 살아야 욜로는 아니지만, 욜로라 하기엔 난 순간의 행복은 꽤 많이 포기하고 있긴 하다.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그렇다면 FIRE라도 될 수 있는가.


당장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일주일 식비는 3만원으로 해결하고 아무런 유흥도 즐기지 않는다고 쳤을 때, 그렇게 죽을둥 살둥 모은 돈으로 조기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보람이 무엇인가.


이미 극단적 거지였던 20대를 지나 이제 좀 먹고살만 해졌는데, 나도 가끔씩은 먹고 싶은 것 사먹고 탕진잼 좀 누려봐야지. 그럴 틈도 없이 또 자발적 거지가 되어 여행 한 번 안 다니고 살다가 갑자기 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아프게 되면?그때도 "난 적어도 은퇴자금을 마련했다네!보람찬 30대였지,암!"하고 죽을거냔 말이다.


그리고 파이어 족의 핵심은 저축한 돈으로 재테크를 잘해서 경제적 자유를 성취해야 하는데, 재테크도 영 녹록지않다.  나름 욜로를 포기하고 옷 안 사고 아낀 돈을 계속 주식에 넣고는 있는데, 내가 손대는 주식 종목마다 망하기 일쑤라서, 요새는 웬지 내가 미국 국채etf를 사면 미국도 망할 것 같다.


결국은 욜로는 삶이 무서워서 못하고, 파이어는 죽음이 무서워서 못하고, 일은 빨리 그만하고 싶고, 돈은 많았으면 좋겠는데 재테크는 쉽지 않고 당장의 소확행은 못버리겠고, 결국 나는 그냥 YORE(You Only Retire Early)족이 되어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응 넌 그냥 조기명퇴야~









매거진의 이전글 양초 하나 못 사는 처지에 달빛을 갖고싶다고 징징대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