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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Apr 30.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사소함에 대해 질문받다

단 114쪽에 불과한데, 1,14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은 느낌입니다. 동시에 옮긴이의 글에 소개된 문장이 빛의 속도로 가슴 속에 파고듭니다.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글을 읽는 내내 가졌던 묵직함이 무엇인지, 읽는 내내 가졌던 감정의 변화가 무엇 때문인지, 모든 궁금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소도시에 다섯 딸과 함께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꾸려나가는 펄롱. 이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석탄 상인인 펄롱의 시선을 따라 전개됩니다. 그가 살고 있는 도시가 점점 쇠락하고 혹독한 시기를 마주하고 있으며 거리에는 불운하고 불행한 사람이 가득합니다. 그들과 똑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가는 펄롱은 미혼모인 엄마와 함께 살아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으며,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모습을 가지지 못했다는 거라는 사실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가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아이의 불운한 삶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자신의 ‘운’에 대한 기억하는 펄롱과 달리 아내는 ‘그토록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신경 쓰면서 살아갈 수 없다고, 때로는 무관심해질 필요가 있다고 펄롱을 다그칩니다. 그때부터 펄롱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수녀원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 불법적인 사건 속에서 무관심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관심을 표현하고, 그 누군가를 지켜주기 위한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심한 내적 갈등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를 구하는 것은 수녀원의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장이며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안락하고 평온한 삶이 깨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길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강물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지만, 고집대로 생각대로 나아간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펄롱. 그렇지만 펄롱은 선택합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19     




1996년에야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 시설에서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적게 잡으면 만 명이고, 3만 명이 더 정확한 수치일 것입니다. (중략)이 시설은 카톨릭교회가 아일랜드 국가와 함께 운영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곳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해 아무런 사죄의 뜻도 표현하지 않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엔다 케니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중에서-      




아일랜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중심으로 펼쳐지는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수녀원의 부정적인 모습이나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을 원망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사람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펄롱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 가치관, 신념에 무게를 실어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묻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랬기에 140쪽이 아니라 1,140쪽으로 느껴졌고, 똑같은 이유로 단어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리듬으로 감정선을 건드렸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수녀원, 세상 어느 곳보다 따듯하고 안온한 풍경 사이로 보이는 속살이 어느 때보다 따가웠습니다. 돕고 살아간다는 것, 끝내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라는 질문이 어느 순간 중반 이후부터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실천적 사랑은 중노동이라고 했던가요. 기대하기엔 너무 어렵지만, 그럼에도 기대하고 싶다는 마음. 거기에서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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