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나는 흔한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서 “정말 강철 체력이네”라는 말을 더러 들었고, 나 역시 그 말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주 2, 3회씩 꾸준히 운동을 해왔고, 건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평소 꾸준하게 노력하고, 실천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9월 추석 연휴 마지막 날부터 몸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고, 기침과 콧물이 이어졌다. 몸살은 극심했고, 2주 동안 거의 꼼짝할 수 없었다. 평소 자랑하던 강철 체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거기에 정기검진 결과에서 조직 검사를 권유받고 나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30대 초반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병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시끄러웠다. 그때는 작은 증상에도 불안감에 시달렸고,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3년, 5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히 운동하면 그게 최고의 방법이야’라고 믿으면서 어떻게 하면 일상에 잘 지켜낼 수 있을까를 연구했고, 그 결과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운동을 지속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심하게 아프면서 그 노력이 배신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열이 내리고 기침이 멈춘 후에도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운동도 꾸준히 했고, 술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고, 밤늦게 과식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그때 떠오른 건 ‘열정’이었다. 내 몸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만큼의 크기로 나를 지나치게 몰아세운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일이든, 업무적인 일이든,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탓에 몸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놓친 것이다.
배신이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원망할 대상도, 사람도 없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지금껏 나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 길을 걸어왔다. 누구도 나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니,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 역시 내 몫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나는 ‘열정’이라는 양날의 검을 적절히 다루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종종 아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이번 일이 내게 그랬다. 내가 가진 열정을 어떻게 다루고, 언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보는 시간이었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출 때와 속도를 조절하면서 10월을 보내야겠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했으니, 이제 남은 건 나아질 일뿐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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