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 한 남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그(김만수)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성석제 작가의 장편소설 『투명인간』은 주인공 김만수의 어린 시절부터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결국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산골 마을 개운리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김만수는 볼품없는 외모, 허약한 체질, 느린 말투로 인해 가족 내에서도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존재감 없는 인물로 살아간다.
똑똑하고 명석했던 큰형 백수, 집안 살림을 책임졌던 큰누나 금희, 연탄가스 중독으로 정신적 장애를 앓게 된 명희,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석수, 세상살이에 능숙하게 적응하는 막내 옥희. 그 틈에서 만수는 묵묵히, 성실하게, 우직하게 자신의 삶을 견뎌낸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존재는 없었던 것처럼, 형제들의 빈틈을 채우며, 어떤 불평도 없이 자신을 태우는 방식을 택한다. 아무도 그를 궁금해하지 않고, 누구도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지만, 만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자신의 자리를 비켜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 형제들이 나를 디디고 밑거름으로 살아서 훌륭하게 되기를 바랐지. 혹시 나중에 뭐가 잘 안돼서 높은 자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든 떠받쳐서 재기하도록 도울 생각이고. 그런데도 나는 형제들, 식구들한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 그냥 형제라고, 가족이라고 말이에요.” - p.267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부끄러움과 염치를 삶의 미덕으로 삼으며, 가족을 위해 언제나 헌신해온 만수는 고통과 불행 앞에서도 단 한마디의 불평조차 내놓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일찍 사회로 나서고, 동생 석수가 남기고 떠난 아이를 책임지며, 위태로운 가정을 묵묵히 떠받치는 그의 모습은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보통 이런 경우, 하늘이 감동해 해피엔딩을 선사할 법도 하건만, 만수의 삶은 매일매일이 소금 가마니를 어깨에 지고 걷는 것처럼 점점 더 무거워진다. 결국 그의 아들, 아니, 동생 석수의 아들이자 그가 키운 태석이 먼저 ‘투명인간’이 되고, 이어서 만수 자신도 그렇게 투명한 존재가 되어간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책을 덮으며 나는 문득 묻고 싶어졌다. 이토록 염치를 알고, 희생을 삶으로 실천한 사람이 끝내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가혹한 불행이 어디 있겠냐고. 하지만 성석제 작가는, 어쩌면 그 질문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혹시 지금, 만수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만수 같은,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나는 믿고 싶다. 작가의 진심은 결국, “그 누구도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욕심보다 양보를 선택하고, 묵묵하게 성실함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다시 조명받고, 더 이상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가, 우리의 이름이, 끝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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