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
정말 그랬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쩌면,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승리 작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열다섯에 시력을 잃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확실한 운명에 휘둘리는 대신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만의 방향키를 놓지 않았다.
장애인으로서, 마사지사로서, 딸로서, 그리고 여성이자, 한 명의 존재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감동적 성장 에세이라고 정리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어느 목적지에 도달한 삶이 아닌, 결코 닿을 수 없을지라도 힘껏 도움닫기하여 멀리뛰기를 시도하는 사람, 또는 오르지 못할지도 모를 높이를 향해 껑충 뛰어오르는 사람처럼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순간을 찬란하게 피워내려는 의지를 담은 고백록에 더 가깝다.
“기사는 내가 못 보는 사람인 걸 그새 잊어버리고 창문을 열어주었다. 창밖에서 군중의 환호와 불꽃이 수도 없이 터졌다. 기사도 밖을 보는지 탄성을 터뜨렸다. 나는 어둠을 훑어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수백 송이의 불꽃이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었다.” - 본문 중에서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지랄맞은 인생’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을 때가 생겨난다. 조승리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분명 비슷한 감정의 흐름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질문에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삶의 방식과 태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정체성에 숨는 대신, ‘나의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수시로 멈춰 서서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삶에 대한 무한 긍정이 아니었다. 고통의 정면을 마주한 끝에서 나오는 어떤 경지, 그녀에게서는 그런 경지,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나 마사지사로서의 고단함에 대해 동정이나 위로를 요구하지 않아서 좋았다. ‘소외된 사람들’을 부각하면서 독자에게 감정적인 호소를 하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그보다 글쓰기와 유머, 농담과 자신만의 철학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자들의 표현처럼 “삶은 고통이다”라거나 “삶은 부조리하다”라는 말 대신 “이 지랄맞음이 쌓여”라고 유쾌하고 직설적으로 정의한 부분은 가히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인생은 참고, 묵묵히 견디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 예를 들어 시력을 잃어 앞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자신만의 빛으로, 삶을 축제로 바라볼 수 있음을 전해준 그녀에게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 삶에 유쾌함이 조금 더 더해진다면, 분명 그녀 덕분일 것이다. 내 삶에 약간의 단단함이 더해진다면, 그 또한 그녀 덕분일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의 글이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올랐듯, 나의 이야기가, 나의 하루하루가 하늘을 향해 뜨겁게 날아오르기를 소망해본다.
from 윤슬작가
#이지랄맞음이쌓여축제가되겠지 #책리뷰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