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무너지지 않는 내가 더 대견하다

by 윤슬작가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되뇌게 된 말이 있다.

“이번에는 여기까지가 내 최선이야.”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시작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유난히 집요한 편이다. 스스로 감동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 그 정도까지는 해내야 한다는 고집 같은 게 있다. 수정을 거듭하고, 다시 점검하고, 또다시 들여다보는 반복. 그 과정은 완성도를 높이고 실수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조금씩 소진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성과를 내면 기분은 좋다. 성과는, 중독적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의 만족감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몸과 마음이 자동처럼 움직였다.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나는 또다시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순조롭기만 한 여정이 아니다. 성실함이 원하는 결말을 보장해주지 않고,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지금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그랬다. 익숙지 않은 영역이었지만, ‘처음이라 그렇지,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자료를 모으고 기획을 정리했다. 두 달 넘게 매달렸고, 초안도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뒤집혔다. 처음부터 컨셉이 어긋나 있었고, 핵심 개념 자체가 빗나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분명하게 깨달았다.


무용지물.

두 달 동안 붙들고 있던 그 프로젝트에 붙은 단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일의 선택권자였고, 결정자였고, 실무자였으니까. 그저 담담하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자료를 한쪽으로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즈음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했다.


“인정하자. 지금의 나는 여기까지야.”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지. 더 늦게 깨달았으면 어쩔 뻔했어.”


최대한 나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심하다거나 아쉽다고 말하지 않으려 애썼다. 왜냐하면,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큰 막막함이 밀려왔고, 가슴 어딘가에서 조급함이 수시로 고개를 들었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던 건 “그래도 내가 무너지지 않았구나”하는 안도의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성과는 사라졌지만, 그 실패를 스스로 감당하려는 ‘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나’를 지켜주고, 다독이고, 다시 일으켜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요즘, 자존감이라는 말이 가볍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짜 자존감은 ‘잘될 때의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잘 안 될 때의 나’를 놓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과가 부족하더라도,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더라도 애쓴 나를 존중하고, 실패 앞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으며, 다시 한번 나와 화해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 아닐까.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나를 다독인다.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무너지지 않은 나 자신이 더 대견하다는 마음으로.


윤슬작가


#윤슬작가에세이 #무너지지않는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경험이 곧 나의 콘텐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