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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친구들

by 윤슬작가

토요일, 친구들이 대구에 왔다. 울산에 살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대구에 살고 있는 나, 늘 중간쯤인 경주에서 만났는데, 이번에는 내 쪽으로 조금 더 걸어와 주었다. 대구 서문시장,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다는, 이름만 들어도 뭔가 즐거울 것 같다며 대구에 올라왔다.



“다음에는 대구에서 한 번 가볼까?”

“너 있는 곳으로 갈게. 서문시장 재밌다고 하던데 거기서 볼까?”

친구들의 말 한마디가 고맙고 따뜻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서문시장에 도착했을 땐 해가 뉘엿뉘엿 기운 다섯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급하게 일을 하다가 온 친구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쇼핑을 시작하기로 했다. 떡볶이, 납작만두, 잔치국수, 그리고 순대까지, 김밥은 품절이라는 웃지 못할 상황 앞에서 한바퀴 돌고 김밥을 먹자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마무리로 물 한잔을 거뜬하게 마신 우리는 서문시장 2지구를 향했다. 그때 발견한 씨앗호떡, 지나칠 수 없었다. 김밥은 후식으로 먹기로 하고, 씨앗호떡까지 먹으면서 우리는 시장 음식의 풀코스를 마쳤다. 그렇게 든든한 배를 이끌고 서문시장 2지구, 들어섰을 때 뭔가 이상했다. 가림막이 내려와 있고, 군데군데 문을 닫는 가게들이 제법 보였다. 시간은 시장을 재촉했고, 그제야 6시 30분이 되면 거의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아, 좀 더 일찍 올걸.”

“아니, 떡볶이만 안 먹었어도...”

“씨앗호떡을 안 먹었어야 했나?...”



아쉬움과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이럴 상황에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 웃음과 농담을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30년 세월이 거저 흐른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얘들아! 우리에겐 김밥이 있잖아. 김밥집 출동!”



하지만 운명은 7시를 향하고 있었고, 김밥집 역시 불이 꺼진 상황이었다. 급하게 달려온 탓일까. 아직 불을 끄지 않은 식혜집을 향했다.



“이야, 꿀맛이다!”

“식혜, 진짜 맛있다!”

“우리 다음에는 진짜 쇼핑하자”

“그래,그래”

“김밥을 제일 먼저 먹자”

“그래, 그래”



식혜의 시원한 위로를 받으면서, 동시에 쿡쿡 웃으면서 우리는 가까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일찍 문을 닫은 서문시장이 아니라, 일 이야기, 가족 이야기, 서로의 근황,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까지. 어쩌면 말이 이야기가 되는 그 따뜻함이 다른 모든 계획보다 더 큰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밤 10시가 가까워졌을 때,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산까지 돌아가야 하는 친구들이 잘 도착할 거라고 믿으면서도, 늦은 시각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그런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을 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공간을 허락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말보다 “내가 갈게”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고맙다. 어릴 땐 자주 보던 얼굴이, 어른이 되어 바쁜 일상에서 마음을 모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도 좋다. 모든 것이 선물이고, 사랑이다.



#윤슬작가 #기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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