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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수 없는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by 윤슬작가

언제부터였을까.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딱히 아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겉으로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해 보였다. 일에도 열정을 쏟았고, 규칙적인 수면을 유지했다. 그런데도 마음 깊은 곳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진 듯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무게를 애써 외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소리 하나, 눈빛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며 문득 ‘아, 내가 좀 이상해졌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게의 정체는 분명했다. 둘째 아이, 밝고 명랑한 성격을 가진 아이가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였다. 내가 알고 있던 경험의 틀,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준 방식은 아이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학교라는 공간, 친구라는 이름의 풍경 속에서 아이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고맙게도 아이는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말이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정말 버틸 수 있는 걸까?’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삼켰다. 나의 불안이 아이의 신뢰를 흔들까 봐, 불필요한 걱정이 아이의 마음을 건드릴까 봐,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맛있게 저녁을 먹으라며 웃음을 건네면서도 나는 침묵을 가장한 고통 속에 숨어 있었다. 아이를 응원하는 척했지만, 실은 내 안의 공허와 싸우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고, 여름의 더위처럼 불안은 좀처럼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나를 흔들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절박함보다는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 일도 안 되겠다’라는 막막함이 컸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10분만 걷자고 마음먹었다.



아무 목적도 방향도 없이, 아침 공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10분은 어느새 20분이 되었고, 그 20분은 30분이 되었다. 그리고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었고, 조심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5분, 10분, 이제는 20분쯤 달린다. 대략 3km 남짓한 거리. 비가 오는 날은 쉰다. 몸이 무겁거나 마음이 지치는 날도 쉰다. 강요하지 않는다. 기록도, 목표도 없다. 그저 내 안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계속해 나가고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다.



외부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아이의 상황도, 나의 고민도 해결된 건 없다. 그런데도 확실히 다른 게 있다. 요동치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조급함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감각을 회복해나가는 중이다.


어쩌면 사는 일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버티는 일, 해결이 아닌 견디는 일, 통과가 아닌 머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내가 나를 놓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누구의 응원이 없어도, 내가 나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그 하루는, 분명 ‘잘 살아낸 하루’가 아닐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from 윤슬


#마음챙김 #일상의글쓰기 #경험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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