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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Feb 09. 2020

'입사 후 포부'에 대해 말씀해 보세요

급조한 답변은 아무 소용없을 게다

지원자만큼은 아니겠지만, 면접관에게도 면접장은 편안한 공간이 아닙니다. 다른 면접관(특히 나보다 상급자인)의 눈치도 봐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지원자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생각해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를 들어, '입사하면 열심히 할 건가요?' 또는 '일이 힘들면 퇴사할 거 아닌가요?'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으로는 변별력 있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진짜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개발해 왔습니다. 유행을 타고 없어지는 질문도 있지만, 그중 몇몇은 예전부터 반복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기소개, 지원동기, 직무 이해, 입사 후 포부, 도전(협업) 경험 등이 그런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미리 답변을 준비합니다. 그걸 면접관도 잘 알면서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지원자의 진짜 바닥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답변을 미리 암기하더라도 한두 단계 더 깊은 질문을 받게 되면 진실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 생각해 온 자기 이야기가 없다면, 임기응변으로 넘어갈 수 없는 질문들이죠. 이번에는 그중에서 '입사 후 포부'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포부(抱負)'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입니다. 면접관이 지원자의 친인척이 아닌 다음에야, 처음 보는 지원자의 계획이나 희망이 궁금할 리 없습니다. 당연히 다른 의도가 있습니다.


제가 면접관으로서 '입사 후 포부'를 묻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묻지 마 지원자'를 가려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지원자는 서류는 어떻게 통과했더라도 지원 직무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설명할 수 없을 거라는 면접관의 희망이 섞여 있습니다.


채용공고가 나오는 대로 여기저기 지원해 보는 취준생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자를 채용하고 싶은 회사는 없습니다. 최종 합격하고 싶다면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지원회사와 직무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짜 포부가 있는 척'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조기퇴사자를 가려내기 위해입니다. 첫 번째 이유와도 연결되는데, 장기적인 계획 없이 무조건 입사한 사람일수록 오래 근속할 확률이 낮습니다.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조기 퇴사자는 회사의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특히 대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신규 인력이 일을 배우다 말고 퇴사하면 업무에 큰 지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근속할지 확인하는데, '입사 후 포부'도 대표 질문입니다.


'입사 후 포부'는 단순히 면접을 통과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경력 설계를 위해서도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합니다. 장기적인 포부가 있어야 직장 생활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난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미래의 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그 어려움의 크기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지원한 직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원 직무를 오래 준비해 왔다면 그 직무를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경지, 필요한 주요 역량, 요구되는 자격증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급조했다면 두루뭉술한 답변만 가능합니다. 아래와 같은 대답들이죠. 면접관에게 이런 대답은 '저는 지원한 직무를 잘 모릅니다'라는 고백으로 들립니다.


OO직무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겠습니다!
신입사원 때는 선배님들에게 열심히 배우고, 10년 후에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저는 관리자로 성장해서 최종적으로 임원이 되는 게 꿈입니다.


면접관이 찾는 사람은 그 회사와 직무를 꾸준히 꿈꿔 온 지원자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입사 후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얘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겁니다. 오히려 면접관의 질문이 기다려지겠지요. 서류 통과 후 답변을 암기한 지원자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겁니다.


원하지 않는 직무도 지원해야 하는 현실에서, 포부를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지원 직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직무를 통해서 어떻게 성장할지 계획을 그려볼 수 있을 겁니다. 짧은 시간에 직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직자를 만나는 겁니다. 현직자가 그 직무를 누구보다도 잘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알아본 내용으로는 면접관을 속일 수 없음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면접관도 결국 현직자이기 때문입니다. (현직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나중에 별도로 정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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