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한 경험은 대입 면접이었다. 면접관은 희끗한 머리가 인상적인 교수님이셨다. 책상 위에 놓인 지원서류에서 나에게 시선을 옮기며 "먼저 자기소개를 해보게"라며 면접을 시작하셨다.
아무 준비도 없는 내게 갑자기 자기소개라니! 게다가 출신학교, 성적, 생활기록 등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살펴보던 분이 나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참고로 나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다. 학력고사 제도에서는 면접이 당락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누구도 대입 면접을 준비하지 않았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지원서류에 없는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이 들었다. 질문한 분이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은 피해야 할 것 같았다. 순간 막막했지만, 잠깐 고민 끝에 나의 성격을 말하기로 했다. 적어도 나의 성격은 그 서류에 적혀 있지 않았다.
저는 고집이 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이룬 성과는 그런 고집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나의 답변 내용과 교수님의 인자한 표정이 꽤 선명하다. 대비하지 못한 분위기에 긴장이 돼서 그 장면이 각인되었나 보다. 내가 떠오르는 대로 답변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설픈 답변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신 것도 면접이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였을 거다. 이어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앞으로 기계공학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텐데,
그런 고집이 있어야 끝까지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그 후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거란 교수님 말씀은 틀림없었다. 하마터면 제때 졸업을 못할 뻔했으니 말이다.
취준생들의 면접 코칭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자기소개를 듣는다. 어디서 베껴 온 내용부터 준비가 안돼서 한 마디도 못하겠다는 답변까지 다양하다. 어쩌다, '자기'를 소개하는데 다른 사람의 글을 참고하게 되었을까? 또는 미리 암기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억지로 끼워 맞춘 자기소개를 접어두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훨씬 훌륭한 자기소개를 듣게 된다. 진짜 자기소개는 말하는 눈빛부터 다르다. 다들 가짜 자기소개에서 말하지 못한 자기 이야기가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풀어 갔으면 좋았을 것을.
내 역할은 새로 듣게 된 내용을 다듬어서 진짜 자기소개로 제안하는 것이다. 내가 지어내는 것은 없다. 단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을 뿐이다. 진짜 자기만의 자기소개를 발견한 취준생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면접 코칭의 재미고 보람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자기소개는 '자기'소개이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끊임없는 자문을 통해 찾아낸 자기 분석의 결과와 지원서류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여야 한다.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진짜 자기소개가 아님은 물론이고 경쟁력 있는 자기소개가 나올 리 없다. 물론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자기 이야기가 없다고, 검색해서 찾은 자기소개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은 금물이다. 면접관들은 요즘 트렌드라는 엇비슷한 자기소개를 줄줄 따라 할 정도로 많이 듣는다. 베낀 걸 모를 거라는 지원자들의 어리석은 기대 덕분이다. 판에 박힌 자기소개는 바로 티가 나고 짜증을 유발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당신이 사장이라면, 자기소개조차 베끼는 직원을 채용하고 싶겠는가?
시중에 떠도는 합격자 답변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좋아서 합격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자기소개는 불합격인데 다른 내용을 높이 평가하여 채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기만의 이야기가 트렌드와 다르다면 의기소침할 것이 아니라 더 자신 있게 대답해도 된다. (그렇다고 트렌드에 벗어난 내용이 무조건 좋다는 식으로 이해한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취업이라는 관문은 유일한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다. 각자 나만의 정답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갖길 바란다. 기존 합격자의 답변을 정답지로 생각하는 취준생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