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에서 알게 된 산책의 즐거움
로테르담에서 걷는 재미를 알게 된 계기로 산책을 더욱 즐기게 되었다. 1년 동안 가족과 같이 보낸 파견 근무 시절이었다. 짬나는 대로 주변을 걸었는데 특히 저녁 식사 후 산책은 하루를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불필요한 회식이나 야근이 없어서 가능했던 즐거움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가족들에게도 소중한 추억이다. 아내는 오랜만에 얻은 휴직을 만끽했었고 아이들은 시험이 없는 세상이었다.
하루 종일 대화 상대가 별로 없으니,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 시간에 각자 할 말이 많았다. 서로 말할 틈을 노려야 할 정도였다. 돌이켜 보니 그런 저녁을 보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다. 당시에는 그것이 일상이었고, 그렇게 저녁을 먹고 이어폰을 꼽고 집을 나서면 따뜻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당시 살던 곳은 로테르담 한 복판인 중앙역 근처였다. 아이들 등교 거리를 생각해서 결정한 위치였다. 덕분에 한 시간 정도 산책이면 로테르담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기한이 정해진 거주 기간 동안 가능한 많이 로테르담을 걸어보려 했기 때문에 산책 코스는 매번 달랐다.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하는 애틋함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거 같다.
로테르담은 2차 세계대전 중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런 곳이 로테르담만은 아니겠지만, 이 도시는 예전 건물을 복구하는 대신 창의적인 건축물로 폐허를 재건했다. 그래서 여느 유럽의 도시와 달리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없다. 대신 자유분방한 이 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넉넉히 녹아 있는 독특한 건물이 시선만 돌리면 나타난다. 공간 아끼지 않고 누가 더 특이한 건물을 짓는지 내기를 하는 듯하다. 작은 땅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박인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눈에 거슬릴 정도다.
산책을 하면서 수로(水路)를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새로운 길에 들어설 때 불쑥 나타나는 수로 덕분에 내가 물의 나라, 네덜란드에 살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수로를 볼 때마다 신기한 게 있었는데, 하나는 늘 일정한 수위였다. 때도 없이 비가 내리고 가끔은 폭우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수위가 변하지 않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자세히 알아보진 않았다. 그 옛날부터 물을 극복하며 살아온 나라이니 당연한 축적된 기술이 있겠지.
수위는 그렇다 치고, 또 의아했던 것은 수로에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 거였다. 물고기 기르는 게 취미인 사람으로서,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맑은 개울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고기가 살기에 충분히 깨끗해 보이는데 고기가 없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물고기가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아님 생각보다 오염돼서 살지 못하는 것일까? 답을 알 수 없으니 산책 때마다 습관처럼 수로를 유심히 쳐다봤다. 누가 보면 물속에 뭔가를 떨어뜨린 줄 알았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지나치던 수로에서 물속에서 굵직한 움직임을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내 팔뚝보다 커다란 물고기였다. 그것도 대여섯 마리가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물빛이 진하고 물고기 체색도 그에 어울리는 색이라 물고기가 수면에서 멀어지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동안 물고기를 볼 수 없었던 이유였다. 나는 무슨 보물을 발견한 듯 그 자리에 한참 서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수로에서 물고기를 보는 것이 쉬워졌다. 한 곳만 응시하지 않고 넓게 보면서 움직임을 느끼는 것이 네덜란드 수로에서 물고기를 찾는 요령이었다. 이전에 물고기가 없는 게 확실하다고 결론 내린 수로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물고기는 늘 거기에 있었는데 내가 찾는 방법을 몰랐던 거였다.
요즘도 마음이 답답할 때 산책을 한다. 뾰족한 답을 찾을 수는 없어도 잠시 걷는 것만으로 머리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걷는 산책 코스는 로테르담에 비하면, 수로는 고사하고, 한없이 익숙한 건물들만 가득하다. 이런 풍경에서 창의적인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진짜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계속 잘못된 방법을 시도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