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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때까지 친구네서 놀지 말아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배려

by 이진호

나 어릴 때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게 흔했다. 요즘처럼 학원 뺑뺑이도 없고 놀거리도 변변찮으니, 친구네서 숙제도 하고 같이 놀다 오곤 했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이런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밥때 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식사 시간은 피해서 가라."

"혹시 식사 시간에 가더라도, 밥은 먹었다고 하는 거다."


한 마디로, 친구네서 밥 먹지 말라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다들 넉넉하지 않던 시절, 아무리 어린 손님이라도 갑작스러운 상차림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나는 잘 몰랐지만,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배려해 식사 시간을 피해 다니는 것이 서로에게 편한 길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생쯤 돼서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달라졌다.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면 반찬 가리지 말고 맛있게 먹고 감사 인사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달라진 건 내가 더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왜 어머니 말씀이 달라졌을까?


그 이유가 단순히 생활 형편의 변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최대한 실례하지 않는 도리가 더 중요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관계 속에서 감사함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야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전부였지만, 고등학생쯤 되면 관계라는 것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단순한 놀이 친구에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의지하는 사이가 되어 간다. 이때는 단순히 폐를 끼치지 않는 것보다, 함께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친구네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상대방의 환대와 정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정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함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성숙한 관계의 시작이다.


아마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호의를 감사히 받고 또 나도 베풀 줄 아는 법을 가르치고 싶으셨을 것이다. 반찬을 가리지 말고 잘 먹으라는 말속에는 단순히 예의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고 그 따뜻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결국 한 가지로 이어진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 어린 시절엔 불편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 배려였다면, 이제는 주어진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배려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가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그 나이에 맞는 배려의 방식과 관계의 깊이를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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