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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 게 없어서 미안해

by 이진호

나는 집에서 정말 가까운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름길로 가면 학교까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당시 고등학생들이 다 그렇듯,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냈다. 새벽같이 시작되는 0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사실상 집은 잠을 자기 위해 잠깐 들르는 곳이었다. 점심과 저녁까지 당연히 학교에서 해결해야 했고, 친구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싸 오거나 저녁을 사 먹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학교가 가까운 장점을 십분 활용하셨다. 새벽에 서두르는 대신, 내가 등교한 후에 여유롭게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 학교 경비실에 맡겨두셨다. 4교시가 끝나면 나는 갓 지은 따끈한 밥을 들고 교실로 올라갔다. 어떤 보온 도시락도 우리 어머니표 도시락의 온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반찬도 따뜻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감자조림 같은 평범한 반찬도 따뜻하면 훨씬 맛있었으니까.


다만 친구들이 하나둘씩 내 반찬을 가져가다 보니, 정작 내 몫이 모자라는 게 문제였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어머니는 반찬통을 더 큰 걸로 바꾸셨다. 절반을 친구들에게 뺏겨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덕분에 나는 반찬 뚜껑을 열 때마다 친구들에게 인심을 베풀며 어깨를 으쓱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도 집이 가까운 덕을 톡톡히 봤다. 친구들이 두 번째 도시락을 먹거나 외식으로 해결하는 동안, 나는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식어 빠진 도시락이 아니라, 방금 차려주신 따뜻한 밥을 먹었다. 더운 날씨에는 집에서 샤워까지 하고 개운한 상태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다른 친구들이 이미 지쳐버린 저녁 시간에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남들보다 편하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늘 따뜻한 밥을 챙겨주시던 그 사랑이 나를 지탱해 준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 어머니는 ‘해 준 게 별로 없어서 미안하다’고 그러신다. 나는 이미 충분히 받았는데도 말이다.


이제 둘째 아이가 고3이 된다. 과연 나도 어머니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의 힘을 전해주고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나도 어머니처럼 말하게 될 거다.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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