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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May 27. 2019

참견 망언에 자존감 떨어진 당신을 위한 연애 코칭

민중의 소리 [만민보] 680번째 인터뷰 -  박수빈 변호사 


A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다. 나는 가수 신해철을 좋아한다. 신해철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담은 가사도, 그와 대비되는 굵은 음색도 좋았다. 그러던 중 A를 만났다. 대학 동아리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던 A가 무대 위에서 부른 곡 ‘그대에게’는 신해철과 닮아 있었다. 그에게 호감을 느낀 나는 무대에서 내려온 A에게 번호를 물어봤다. 대화나 가치관도 잘 통했고, 유머 코드도 잘 맞았던 나와 A는 얼마 후, 연애를 시작했다.


A와 연애 후, 이상한 지점에서 자존감이 낮아졌다. 나는 분명 A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A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 나를 향해 “의대생 연인을 둔 성공한 애”라거나 심지어는 “젊고 이쁜 여자가 능력 있는 남성을 붙잡는다”며 외모에 더 신경 쓰라는 충고까지 받았다. 반복적으로 그런 말에 노출되니 나는 점점 ‘쭈그리’가 됐다.


이 같은 경험이 ‘특수 케이스’만은 아니다. “여자는 내숭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성공한 남자는 예쁜 여자를 얻는다”, “남자가 울면 고추 떨어진다”, “여자는 성적으로 순결해야 한다”, “결혼하면 여자는 내조에 신경 써야 한다” 등. 나열하기도 힘든 다양한 ‘망언 충고’에 맞춰 자신을 여성다움, 남성다움 틀에 욱여넣는다. 그런 틀 속에 끼워 맞춘 이들끼리 한 연애는 어떨까. 그 틀에 못 들어간 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이런 연애를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이와 관련한 고민과 해결책을 담은 책 <연애도 계약이다>가 출간됐다. 자존감 상승 연애 코칭을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저자 박수빈 변호사를 지난 17일 교대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연애 코칭’을 받았다.




'연애도 계약이다' 저자 박수빈 민변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너와 나는 동등하다”
사회가 정한 틀에서 해방된 너와 나의 사랑 이야기




“계약하듯 연애를 했으면 해요”


박수빈 변호사의 첫 마디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법알못’(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들었을 때 ‘이익의 관점에서 연애 상대에게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인가?’ 하는 반발심이 들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오해”라며 자세히 설명해줬다.


“‘계약법’은 예로부터 거래 계약을 할 때 상대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규칙을 정한 것이에요. 가장 합리적인 인간관계 방법을 서술해 놓은 것이죠. 계약의 기본 전제는 ‘동등한 두 사람’이 체결한다는 점이에요. 연애 역시 마찬가지죠. ‘사랑’의 감성적 측면만을 강조하며 인간관계의 기본 전제를 무시한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박 변호사는 그보다는 ‘기본은 지키는 관계’를 주장했다. 그는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 예의를 갖추고 계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도, 상대도 주체적인 사람이며, 동등한 개인임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제안했다.


물론 박 변호사의 말은 ‘너와 내가 동등하다’고 도장 꾹 찍으면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서로 간의 원하는 바(계약의 내용)를 끊임없이 제안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 간에 약속한 바를 책임지고 이행해 나갈 때 ‘관계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연애를 시작할 때 진짜 계약서를 쓰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에요”라고 웃어 보였다.




'연애도 계약이다' 저자 박수빈 민변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문득 이 책을 읽은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박 변호사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의외로 남성분들이 저의 책에 반응이 좋아요. 특히 서로 간에 ‘배려하는 방법’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중 한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분은 사회가 말하는 ‘여자한테, 남자한테 잘해주는 법’대로 열심히 했는데 상대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어요. 그런데 ‘사회가 말하는 ~한테 잘해주는 법’은 사실 계약적 관점에서 봤을 때 합리적인 이야기가 전혀 아니에요. 계약법 상에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야 채무가 이행된다고 봐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잘해주는 것 아닌가요?”


박 변호사는 예시 하나를 들기도 했다. 그는 “예를 들어 제가 100만원을 빌렸어요. 분명 돈으로 갚으라고 했는데, 저는 상대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금전적 가치 200만원 어치의 음료를 사서 줬어요. 그럼, 제 입장에서는 잘해준 거죠. 하지만, 돈으로 갚으라고 요구했던 상대 입장에서는 잘해준 걸까요? ‘남자/여자는 ~ 행동해야 여자/남자에게 잘해주는 것이다’는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오해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계약은 체결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돼요. 이것을 ‘체결의 자유’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연애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됩니다. 사랑한다고 꼭 연애를 해야 하나요? 꼭 이성간의 연애만 연애인가요? 그 연애를 체결할지 말지는 온전히 본인의 자유니까요”




'연애도 계약이다' 저자 박수빈 민변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박수빈 변호사가 페미니즘 실용서를 쓴 이유


박 변호사는 <세월호, 그날의 기록> 공동저자로 참여한 이후, 첫 단독 저서로 ‘연애’를 주제로 선택했다.


“사람들 인식 속 연애는 사적인 것, 가벼운 것으로 치부돼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연애가 정말 사적인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연인에게 살해당하고, 각종 신체적·언어적 폭력에 시달리는 데이트 폭력, 자기 의사결정권 등을 철저히 침해당한 불법촬영, 스토킹 등과 같은 성범죄가 버젓이 매일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연애가 ‘사적인 것’이라고, ‘남의 연애에 무슨 참견이냐’고 외면해야 할까. 박 변호사는 그럴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가 첫 단독 저서 주제로 연애를 선택한 이유였다.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요. 이 책도 페미니즘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시킬지에 관한 실용서에요”


실제로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보기’, ‘특정 성 역할에 한정 짓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상대의 자기결정권 인정’ 등 박 변호사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실생활 연애를 풀어냈다.




'연애도 계약이다' 저자 박수빈 민변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박 변호사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


“저희 어머니께서 굉장한 페미니스트예요. 어머니께서 노혜경 시인이신데, 여성시 운동을 시작한 분이예요. 자연스레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도 ‘여자라고 안 되는 것은 없다’, ‘지지 말라’, ‘주체적인 사람이 되라’고 항상 교육하셨어요”


부모님의 영향 덕분이었을까. 박 변호사는 어렸을 때부터 페미니스트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신경숙 소설가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비평 글을 ‘인물과 사상’에 기고하기도 했다. 요지는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 전혀 주체적이지 못하고, 돌봐 줘야만 하는 여성상으로 그렸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대학에 들어가서 ‘페미니즘의 이해’ 수업을 들으며 지금까지의 연애가 문제가 있었구나를 깨닫게 됐어요. 그 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연애 관계를 고민하게 됐던 거 같아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박 변호사는 자신의 삶의 모토를 언급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사람에게 덜 잔인한 사회가 되고,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며 살고 싶어요”


가부장적인 단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등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성찰하는 학문, 페미니즘. 박 변호사가 페미니즘 실용서를 쓴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다음 책 구상’에 대해 물었다. 박 변호사는 “아직까지 다음 책을 구상하고 있지 않아요”라면서도 “관심 있는 주제는 있어요”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그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을 제도가 없다는 데 관심이 가요. 꼭 남녀의 연애 관계가 아니더라도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욕망이 실현되고 있잖아요. 심지어 최근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까지 나왔죠.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의 고민을 담은 다음 책 소식이 벌써 기다려진다.


장윤서 기자 blackdog@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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