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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Jan 10. 2020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민의 기본적 권리인 투표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권리를 행사할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권리는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투표할 권리는 국민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해소하는 일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의무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열심히 선거운동할 필요 없어. 어차피 투표하러 못가"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내 인생 첫 선거운동은 노사모로서 노무현 후보가 경선을 치르는 일을 위해 뛰어다닌 것이고, 그 이후 대선 당시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며 응원한 것이 시작이지만, 본격적으로 유권자의 손을 잡은 것은 2004년 총선 때였다. 엄마가 출마를 한 것이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교복을 입고 띠를 두르고 시장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손을 잡았고,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엄마, 일 잘할 테니 한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많은 분들이 애기가 고생한다며 다정하게 대해주셨는데 간간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투표일은 휴일인데 왜 투표를 못하나? 그때 알게 된 사실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운 헌법에는 분명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는데, 왜 투표를 못하는 사람이 있지?




우리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정해 놓았다. 그런데, 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바로 이 부분의 영역에 함정이 있었다.


2004년에 알게 된 사실은 그랬다. 선거일 투표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지금도 보궐선거의 경우에는 8시까지 연장되었으나 총선일에는 저녁 6시까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전투표일에 아무 데나 사전투표소에 가서 신분증만 내면 투표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부재자신고를 한 사람에 한해서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만 투표가 가능했다(지금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기존에 오전 10시부터 부재자투표를 하도록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났다). 게다가 미리 부재자투표등록을 한 뒤 우편으로 온 부재자투표용지를 본인이 직접 들고 가서 투표를 해야 했다. 참으로 번거로운 제도다.


그 얘기는 뭐냐면, 출근을 6시까지 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보통 6시 전후 퇴근인데, 선거일에도 출근을 하면 투표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상인들은 보통 새벽에 출근하고, 주거지가 일터인 시장 근처가 아닌 사람들이 많았다. 사전투표시간도 낮에 이루어지니 부재자를 투표를 하려고 해도 어려우니 결국에는 투표가 불가능한 것이다. 2004년 당시 기사에 따르면 총선일에 직장인 60%가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생산, 기술, 제조업은 62.3% 정도, 건설, 일용직 직장인은 약 75.8%, 서비스, 요통업은 무려 80.5%의 응답자가 투표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620221)


두 가지가 다 문제다. 선거일에 출근을 하는 것도,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있는 부재자투표도 가능한 시간이 없다는 것. 부재자투표소 자체도 그리 다양한 장소에 설치되지도 않았다. 부재자투표소는 청년의 경우, 주소지와 거소지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다른 지역으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임시로 취업을 한 경우 등) 부재자투표 제도가 아니면 투표를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재자투표소의 경우도 부재자투표예상자가 읍, 면, 동 구역 안에 2000명이 넘어야 설치해주었기 때문에 대학 내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투표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일이 법률에 맡겨져 있는 만큼,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은 관련 법률을 계속적으로 개정하고 제도를 발전시켜서 국민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권리는 있는데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의 문제, 우리는 법률의 문제에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법률을 만들 책무를 가진 국회의원의 행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도 보좌진인데 법안 하나 만들어 봐라"

2008년, 대학교 3학년, 휴학을 하고 국회의원실 인턴이 되었다. 7개월 정도 근무를 했는데, 당시 의원님께서 법안을 만들어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당시만 해도 대학생이 자원봉사격인 무급 인턴이 아니라 급여를 받는 유급 인턴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인턴에게 법안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하는 일은 당연히 더더 드물었다).


나는 관심사였던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고 싶었다. 당시 부재자투표 등록을 해야만 투표를 할 수 있는 것도, 본인 거소지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것도 모두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거일에 아무 데나 가서 투표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왜 선관위는 부재자투표소 설치 기준을 2000명이라는 높은 기준을 세워서 대학가에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하지 않는 거지? 청년의 투표율을 높이겠다고 주장하면서도 마치 고의적으로 청년이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무데서나 투표할 수 있고,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는 인원인 2000명 기준을 500명 정도로 하향하는 법안을 만들고 싶었다. 우선 선거관리위원회 쪽에 문의를 했다. 주소지 상관없이 아무데서나 투표를 할 수 있는 기술이 현재 가능한가? 당시 현재 기술로는 무리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부재자투표소 설치 기준이라도 낮춰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는 대학생이었고 법과 법령의 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라 국회 내 법제관에게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는 인원인 2000명 기준을 500명 정도로 하향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문의했다. 근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비서님이 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거 법령으로 하는 거라 법으로는 안돼요. "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당시 부재자투표소 설치 기준은 법이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하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서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기준을 바꾸기 위해서 국회의원실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속 질의하고 요구하고 압박해서 규칙의 개정을 이끌어내거나, 법안으로 부재자투표소 기준의 구체적 범위를 설정하도록 개정하면 되는 것. 그런데, 법제관은 내게 후자의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전자의 문제라고만 이야기했던 것이다. 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법제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고 그런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 내가 치사해서 법 배우고 만다"


단순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법을 직접 다 배워 해결해야 할 정도로 정치권이 게으르지는 않았다. 내가 개선하고 싶었던 부재자투표의 까다로움은 4년 뒤인 2012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사전투표제도가 도입되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2014년 총선부터 본격적으로 전국단위의 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부재자신고를 해야만 사전투표 격인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었던 기존의 제도를 폐지하고, 누구나 신분증을 가지고 사전투표소 아무 데나 가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2014년부터는 사전투표 기간과 선거일 모두 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은 고용주에게 투표하러 갈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고 이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는 고용주에게는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느린 것 같아도 조금씩 국민의 권리행사를 위해 법은 개선되고 있다. 선거는 매우 명확하게 국민이 정치인에게 보여주는 의사표시의 현장이다.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제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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