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학기, 행정학원론 첫 수업이 생각난다.
교수님은 스무명 남짓 되는 학생들에게 말하셨다.
"뭐가 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한 사람씩 이야기해보자"고
그때 나는 국가에 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러고보니, 사무관에 대한 내 생각도 그리 짧았던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그때 인상 깊었던 답변들 중 정외과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몇 분 남지 않으신 위안부 할머님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수능을 위해 한국사를 공부할 때,
대학교에 입학해 공부할 때,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일들은 물론이고 방대한 양의 한국사 지식을 외웠다.
지금 회상해보자면
내가 우리의 역사를 마음으로 느끼고, 공감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무수히 반복하여 보고 외우고 했던 활자들은 사실 내게 그저 활자에 불과했고 기껏해야 약간의 분노를 가져오는 인륜적이지 못한 사건들로, 나와는 가깝지 않은 어떤 것이었다.
대학에 와서 배웠다고 하기에도 뭣한 정치학 지식들, 권력에 대한 집념 따위들, 나도 모르게 접하게 된 이런 저런 사고의 통로들을 통해서 나는 조금이나마 역사책 속에 무미건조하게 서술된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 주체가 바로 "인간"임을 점점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지금 내 머릿 속 영화의 잔상들 중 가장 큰 부분은 영화의 색감이다. 특히, 정민이 일본군에게 끌려가기 전까지 장면들이 티없이 맑고 밝았던 것.
가장 좋았던,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여자아이들이 끌려가 있을 때 물가에 옹기 종기 모여있던 장면이다.
전쟁이라는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비인륜적인 명분으로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여느 또래들처럼 농담을 하고, 노래를 하고, 장난을 친다.
그렇게 끌려갈 수 있었던 사람은 정해져 있던 게 아니다.
내가, 내 동생이, 내 언니가, 내 친구가 갔던 것이다.
영화가 끝이 나고 펀딩에 참여했던 명단들 위로 할머님들이 그리신 그림들이 띄워졌다.
영화가 보여주었던 것들이,
내가 역사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또 거기서 봤던 사진들이
하나의 과장도 없음을 말해주는 그림들이었고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이기 싫었고, 부정하고만 싶었다.
이렇게 여운이 남는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영화를 보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인지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싶어져 전화를 걸었다. 요즘 공부한다는 핑계로, 할머니께 전화도 못드리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으시자마자 올라오는 온갖 감정들을 누르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 손녀딸은 할머니가 말을 안해도 다 알아주는거 할머니도 다 알지."
할머니와 조만간 소록도를 가려고 한다.
여름이 되기 전 가도록 노력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