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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May 30. 2018

듣기 싫은 말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부러 떠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런 사람.
 
 
 
아마도 몇 년 전 엄마 일을 도와드리던 날이었다.
엄마는 여느 날과 같이
늘 점심을 배달시켜 드시는 곳에 전화를 거셨고
배달하시는 분이 엄마의 최애 음식 순두부 백반을 들고 오셨다.
그 분이 나를 보시고 네가 사장님 딸이냐고 물으시더니
이윽고 하시던 말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사장님처럼 열심히 사는 분을 나는 본 적이 없어요.
늘 사장님을 보며 나이와 상관없이 배우는 게 많아요.
그런 분이 어머니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맥락의 말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엄마의 일터에 갈 때면
주변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들, 혹은 손님들에게
자주 듣던 이야기라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입 밖으로 어떠한 말을 꺼내기보다 그저 웃음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점 그런 말들이 듣기가 싫어진다.
 
 
 
사회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주고
그 모습 자체로 하나의 표본이 되는 그런 사람들.
내게도 역시나 그런 분들이 있고.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닌 엄마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시간이 갈수록 싫어지고 때때로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잠을 포기하고
휴식을 포기하고
여가를 포기하고
하나 둘 포기하는 게 많아지면서
펑범한 사람일 뿐인 우리 엄마는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많은 포기의 이유가
결국에는
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다.
 
내가 태어남으로 인해
수많은 포기가 어쩌면 버릇이 되어버린 엄마에게
그러지 말라고도,
아니면 계속 그렇게 하라고도,
그것도 아니면
그냥 엄마 마음대로 하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
 
그래
결국 나는
나 때문에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는 거였고
화가나는 거였다.
 
이렇게 화가 날수록
나는
돌아 돌아
결국에
엄마를 돕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느낀다.
 
엄마가
수많은 포기와 맞바꾼 딸랑구 덕분에

자주 자주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 쓰고 보니
마지막 한문장을 쓰고 싶었던 건데
오늘도 말만 많아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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