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접한 부모님의 반응을 바탕으로
2018년 12월에는 다양한 영화가 개봉했다. 그 중에서도 이슈의 중심에 있는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국가부도의 날이다. 많은 미디어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더 많이 다루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무거운 주제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에 무게를 더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도 외환위기 이후 IMF가 만들어 놓은 체제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영화를 본 후, 집에서 필자의 부모님은 요즘 볼만한 영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물음에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국가부도의 날을 추천 드렸는데 영화제목을 말한 후 부모님 반응이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국가부도의 날이라니. 제목이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다.”
사실 국가부도라는 말이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당시 기자들은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IMF체제 아래 들어간 것을 사실상의 국가부도라고 보도하였다. 그런 연결지점에서 보면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제목은 그 시대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이후 필자의 권유로 영화를 실제로 보시고 난 후에는 공포감은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부도라는 한 단어에 부모님이 공포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이며, 2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외환위기를 다룬 소재가 미디어에 등장했을까.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외환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질문 중에서 마지막 소재는 사실 이 글에서 다루기는 조금 힘들다.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설문조사를 하고 표본을 추출한 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논문을 써야 하는데, 그 정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연구소 안에서 여러 프로그램들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범위를 조금 좁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먼저 다루고, 다소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세 번째 질문까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여담이지만 마지막 세 번째 질문 같은 경우에는 논문 범위에서 서술하여 게재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국가부도라는 단어가 어떤 부분에서 공포감을 느끼는지 다루기 전에 국가부도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보자. 국가부도라는 것은 국가가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국가부도가 일어나게 되면 해당 국가의 화폐가치는 하락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철수하며, 수많은 기업들이 붕괴한다. 그로 인해 물가는 상승하는데 실업자는 넘쳐나고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확실히 이런 상황은 좋지 않은 상황이 맞다.
하지만 현재는 국제 교류가 매우 고도화 되어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지구 반대편 상황을 뉴스로 접할 수 있고, 자본과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만약 한 국가가 불안정해지면 그 주변에 있는 국가들도 영향을 받게 되는 만큼 국제사회가 움직여 한 국가가 망가지는 것을 막는다.
이런 사실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국가부도라는 것이 한 국가가 경제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어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시현 팀장이 모라토리엄(채무유예) 선언을 하자고 이야기 한 것이다. 국가도 채무가 너무 많아 갚지 못하게 되면 빌려준 당사자도 손해를 보기 때문에 협상을 함에 있어서 유리하게 할 수도 있고 국내적으로 시간도 벌 수 있던 것이다. 실제로 외환위기를 연구한 논문에서는 IMF 구제 금융을 굳이 신청하지 않더라도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으면 딱히 외환위기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정리하면 국가부도라는 단어는 돈을 못 갚게 되어 나라가 멸망하는 단어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필자의 부모님은 국가부도라는 단어에서 공포감을 느끼셨던 것일까? 그 답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사실 필자가 이 영화를 보라고 강하게 권유한 이유는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국가에 대한 부채감을 덜고 외환위기가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며, 본질은 대처를 잘 못했던 정부와 금융당국, 기업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조의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 부모님께서는 외환위기로 인해 겪었던 고난을 통해 당시 사회와 자신을 일체화 시켰다. 부모님 생각에 국가가 겪는 위기는 곧 자신이 겪는 위기이며 국가부도는 자신이 의지하고 지탱해오던 버팀목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정부와 금융당국에서는 사회 안정을 이유로 이와 같은 상황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우리는 펜더멘탈이 튼튼하니 정부를 믿으라는 말만 외쳤다. 그러다가 파국에 도달해서야 사람들에게 IMF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또 언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본질을 전달하기 보다는 매일매일 주가하락, 환율상승, 기업부도만 보도를 했지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이 해외여행가서 호화롭게 돈을 썼기 때문에 외화가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불안과 부채감 속에 실제로 옆집 누구 네는 아버지가 실직했고, 어느 가족은 자살했고, 어느 가족은 시골로 도망갔다고 말이 도니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부모님도 당시 극복하는데 굉장히 힘들었다고 전했으니까.
이런 불안에다 회사에게나 쓰던 부도라는 말을 국가에 썼으니, 부도난 회사가 사라지듯 국가도 사라질 것이고, 우리의 잘못(?) 때문에 국가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를 탓하기 보다는 국가를 어떻게든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장롱 속에 숨겨둔 금을 모아서 은행에 갖다 주었고, 또 내 권리 보다는 국가, 그리고 국가경제를 받치는 대기업을 위한 정책에 순순히 응했던 것이다. 그렇게 국가를 살려내면서 힘들었던 기억, 그리고 당시 국가위기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거기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는 첫째와 유치원생인 둘째가 있다는 현실이 섞인 그 무서웠던 상황을 부모님은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제목을 통해 떠올린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필자의 부모님 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겪었던 기억이다.
그렇다면 왜 2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외환위기를 다룬 미디어가 등장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실책을 덮기 위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압력을 무릅쓰고 2000년대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생명이든 자신이 입은 상처와 마주보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기제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국가부도의 날 이라는 영화를 보는 순간 외환위기 때 겪었던 고난이라는 상처를 마주 볼 것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펼칠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고 영화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방어기제라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결국 21년 만에 외환위기를 다룬 미디어가 등장했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21년 만에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상처를 마주 볼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 만큼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성숙해지고 용감해진 것이다. 그 성숙과 용기는 2014년 겪었던 세월호 참사와 2016년 촛불집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걸 바탕으로 비로소 우리는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외환위기를 역사적 사건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쉽게도 마지막 질문, 지금 한국인에게 외환위기는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그 안에서 책임이 불거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누구를 죽이니 살리니 하며 살벌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논의를 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온 대사처럼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복합적인 인간관계에서 승패를 말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여기에서 다시는 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여 공포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것. 그리고 어떤 정책이던 사람이 먼저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