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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의 Dec 14. 2018

친일과 역사왜곡 논란에 가려진 미스터 선샤인의 본질


사극을 방영하게 되면 끊임없이 고증 문제가 제기된다. 당대 상황을 맞게 묘사해야 몰입감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하이힐이 등장한다거나, 조선시대 풍경에 콘크리트 배수로가 등장하거나, ppl을 무리하게 집어넣으면 극 몰입감이 갑자기 깨진다.
그리고 과거 사극에는 역사학자들이 감수를 해서 사건에 대한 왜곡이 다소 적은 것도 있고, 과거에는 단지 재미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문제 제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극에 대한 재미와 고증 두 마리 토끼를 잡아주는 드라마를 찾고 문제 제기도 많이 듣다 보니 요즘에는 정통 사극보다는 퓨전사극이 인기가 많다.
어쩌면 미스터 선샤인도 퓨전 로맨스 사극으로 제작된 재미있는 드라마 중 하나지만, 퓨전사극임에도 역사왜곡과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위 내용이 담긴 기사를 지인의 SNS를 통해 봤는데,시대 설명이 역사적 배경과 맞지 않으며, 어려운 시대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인물에 대한 묘사보다는 침탈하는 열강 세력을 낭만적으로 그려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는 내용이었다. 위 기사를 올린 지인은 평소 민족 해방과 자주를 부르짖다 보니 이런 논란에 극렬한 분노를 보였지만, 이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는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기사였다.
왜 그런지 설명하기 전에 먼저 전제를 말하고자 한다. 미스터 선샤인의 친일 논란과 역사왜곡을 적은 위의 기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라마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외면한 역사적 사실과 관점을 잘 집어냈다. 다만, 위 논조에 찬성하는 사람과 위 기사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 만약 역사적인 사실과 고증을 정확히 하면 이 극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미스터 선샤인의 인물과 배경, 갈등관계는 이전에 접했던 근대 사극과는 다르다. 비슷한 배경의 시대극이 정치사적인 부분과 역사적 사건에 핵심을 맞췄다면, 이번 미스터 선샤인은 로맨스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심지어 거대한 시대적 격랑의 중심이었던 고종과 조정, 일본 내각, 이토 히로부미, 러시아 모두 극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극적 배치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진의는 작가만 알겠지만 개인적 판단으로는 주인공의 행적과 심리묘사를 극대화하기 위해 역사적 주연을 드라마에서는 조연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더욱 집중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주연들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선택에 집중할 수 있다.
만약 역사적인 부분을 강조했다면 어떤 드라마가 나올까? 우리는 어쩌면 시대적 배경에서 뜬금없이 로맨스가 들어간다고 욕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주인공과 악역으로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선악구도가 또 만들어질 테고, 주인공은 위기를 극복하며 새 시대를 사랑하는 여인과 개척하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적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 선샤인은 위 구도로 갈 수가 없는 구도이다. 주요 인물도 많고 배역들의 감정선도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집어 생각해보면 저자는 많은 인물과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감정 선을 넣은 것이 당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근대 초 우리의 모습과 일맥상통하기 위해 만든 작가의 설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기존의 가치관이 위협받고 새로움이 넘쳐나던 시대, 트라우마를 가지고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혼돈의 시대, 이성의 탈을 쓴 야만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들이 한 여자를 두고 피어나는 감정 선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구도이며, 여성 주인공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함으로써 남자 주연배우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구도이다.
이런 구도는 주변 배경이 안정된 구도에서는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근대라는 환경 때문에 이 드라마 배역의 감정, 행동들이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지고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이 부분이 바로 미스터 선샤인의 매력 포인트이고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렇게 훌륭한 구도를 두고 뜬금없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의병의 이야기로 극을 소개한 것이 너무 아쉽다. 어쩌면 이번 친일과 역사왜곡 논란은 아마 민중 영웅적 서사시로 티저를 집어넣고 본 극은 퓨전 로맨스 사극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차라리 격동의 세월 속에서 피어난 한줄기 엇갈린 인연으로 표현했다면 친일 논란은 굳이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스터 선샤인은 퓨전사극이면서도 서사시적 구도에 빠지지 않은 새로운 매력의 드라마이다.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현상에서 드러나는 사실보다는 극이 무엇을 묘사하고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감정 선과 구도에 재미있게 몰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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