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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Dec 18. 2022

불륜 영화, 나만의 비하인드 스토리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보고서


                   *** 이 글은 영화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얼마 전에 아주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라는 넷플릭스 영화인데, 원작은 1920년대에 영국 작가에 쓰인 소설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불륜의 소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애마 부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환희와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 사이에서 이분법으로 구분 짓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또한 단순히 자신의 정욕을 이겨내지 못한 한 인간의 외도로 보는 시선이 조금 안타까웠다. 그리하여 내가 바라보았던 관점으로 여주인공 코니의 감정선을 따라 영화를 재구성해서 써보기로 했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채털리 가문의 가주인 클리퍼드가 자신 아내인 코니에게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다. 클리퍼드는 코니와의 결혼식 직후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다가 하반신 불구의 몸으로 돌아온다. 성불구자가 된 것이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하여 삶을 연명하는 자신을 보면서 큰 실의에 빠진다. 그의 귀족적인 오만한 성격에 타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허무주의에 빠지면서 아내 코니에게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결국 그가 삶의 의미를 찾은 곳은 가문의 명예나 영광을 지키는 일에서였다. 그에게 감정이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자신 아내인 코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의 제안은 그녀가 가문의 후대를 잇기 위한 아이를 다른 남자에게서 생산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애인을 만들고 그 남자의 아이를 배서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감정만 잘 다스리면 문제없을 거라고, 치과에 가서 치료받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냐고 덧붙인다. 코니는 그의 가치관에 큰 의문을 품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한다.      

    

    그녀의 일탈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클리퍼드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그들은 채털리 가문의 본가인 랙비라는 시골 마을에 정착한다. 코니는 이곳의 시골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까지 그녀의 삶은 런던 상류계층의 자유분방한 생활에 초점에 맞춰있었다. 게다가 누군가의 시중을 드는 일은 그녀에게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간병인을 쓰지 않겠다는 그의 완고한 고집 때문에 그녀는 그의 간병과 히스테리를 홀로 감내하고 있었다. 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코니는 그의 행동과 말투에서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렸음을 20대의 젊은 여자의 몸으로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커질수록 모든 것이 그에게 맞춰 돌아가는 낯선 저택 안이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코니는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를 저택 문밖의 산책길에서 찾는다. 클리퍼드를 어릴 적에 돌보았다는 보모가 간병인으로 들어오자 그녀의 산책은 더욱 잦아진다. 그녀는 저택 밖에서 영지 내에 살고 있다는 사냥터지기와 몇 번 마주친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의 남성성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그를 향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날도 그녀는 참을 수 없이 숨 막히는 저택을 빠져나와 꿩이 있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녀는 꿩이 알을 품었다는 소식을 듣자 꿩에게 묘한 선망을 갖고 있었다. 오두막에는 올리버가 먼저 와 있었다. 코니가 새끼 꿩을 손으로 들어 올리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자 올리버가 이를 돕는다. 새끼 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올리버의 손이 그녀의 두 손 위로 살포시 포개졌다. 그러자 코니는 가슴 한켠에 영원히 메워질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의 존재를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자기 손바닥으로 전해진 안락함에 걷잡을 수 없이 격양된다. 그녀는 거침없이 올리버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코니는 그날의 결합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올리버와의 밀회를 이어간다. 그녀가 남편의 제안을 언제부터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서로의 몸을 탐닉할수록 서로의 마음은 더욱 밀착되어 갔다. 그녀는 올리버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외로웠음을 고백한다. 그녀는 클리퍼드와 함께 있으면서 원래 자기 모습을 서서히 잃어갔음을 깨닫는다. 사람에게는 타인이 채워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그래야 비로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코니는 올리버와 함께하면서 자신이 완전히 채워졌음을 느낀다. 그들은 감정에 꾸밈이 없는 사람들이다. 클리퍼드처럼 어떤 목표를 위해 감정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귀 기울여가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고로 타인의 감정을 함부로 억압하지 않는다. 둘 다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이해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영혼의 단짝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코니는 자신이 올리버의 아이를 가졌음을 직감한다. 그녀는 올리버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그를 설득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아직 코니와 함께 하는 것에 확신이 서 있지 않다. 오두막 밖으로 보이는 하늘처럼 그들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는 것을 그는 예감한다. 밖에서는 비가 쏟아진다. 음울하게 앞날을 비관하고 있는 올리버를 두고 코니는 갑자기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위아래로 얇은 속옷만 걸치고 오두막을 나와 빗속으로 홀연히 뛰어든다. 그리고 온몸에 비를 적시며 무언가에서 해방된 듯한 환희를 내지른다. 올리버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지만 이내 그녀와 똑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녀는 나머지 속옷까지 훌러덩 내던지고 풀밭으로 뛰어간다. 올리버도 전라의 상태로 그녀의 뒤를 쫓는다. 둘은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에서 풀밭 위를 서로가 서로를 쫓으며 뛰고 넘어지고 비를 처음 맞은 아이처럼 환희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곧 자신들 앞에 무엇이 있든 두려울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공동체의 편견 따윈 제쳐두고 오로지 너와 나 둘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한다. 






표지에 대한 이미지의 출처는 '네이버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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