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쿠나 Sep 21. 2021

울창한 현실의 수풀 속에 숨겨진 어른들의 환상동화

영화, 파이란을 읽다

어린 시절 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걸 볼 때면 상상하곤 했다. 저 비의 끝은 정녕 존재할까?

만약 비의 끝 선에 이를 수 있다면, 상상했던 대로 몸의 반은 젖고 다른 반절은 온전할 수 있을까. 별 것도 아닌 호기심이지만, 사람은 때로 무용한 것에 더 열렬히 집착하기도 하는 법.


하지만 그 집착 꽤나 오랫동안 쓸모 없는 것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기에 의식적으로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소년의 때였음에도 비가 올 때마다 이 상상을 계속 한다면 이룰 수 없는 갈증이 내 삶을 핍박할 것 같아 막연하게 두려웠다. 이 모든 감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포기하는 것이 삶을 수월하게 만들 정도라는 것은 감지했다랄까.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어학연수라는 명목으로 캐나다에 갔을 때, 어린 시절 애써 눌렀던 소망은 별안간 눈 앞에 펼쳐졌다. 기대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했기에 그 장면은 그야말로 느닷없었고 벼락 같이 내게 찾아왔다.


벗들과 함께 차를 빌려 지명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곳을 다녀오는 도상에서 마주한 넓은 들판에서였다. 비록 차 안이어서 밖에 나가 옷을 적시지는 못했지만, 뒷좌석에서 연신 좌우 양 끝을 오가며 차창을 열어 팔을 쫙 뻗어보며 신기한 눈 빛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과연 이 편에서는 비가 내리는데 저편에서는 해가 쨍쨍했다. 비의 끝이 과연 존재함을 관념이 아닌 실재로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기억 속 놀라운 점은 이후의 내 반응이었다. 분명 감탄이 나오는 경험이었지만, 놀랍게도 생경한 체험이 주는 신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깐의 소란과 탄성 이후, 아무렇지 않게 알버타와 브리티시 컬럼비아 어간의 들판을 계속해서 내쳐 달렸고, 이내 더 이상 경계선을 두며 내리던 비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포함한 차 안의 누구도 하지 않았다.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 간질거리는 감정과 경험도 이와 같아서 생을 살다 보면 무뎌질 때가 오고 만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며, 움찔거렸던 옛 감정의 원형, 감정을 잉태하던 씨앗이 아직 내 마음에 있을까 의심하는 상황에 이를 정도까지 밋밋해지기도 한다.

ⓒ 튜브엔터테인먼트, 강재는 스스로를 쌩양아치, 병신이라 말하지만 파이란은 그를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 말한다

영화 파이란의 하류인생, 무능한 깡패 강재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지난 날, 고깃배 한 척 장만하겠다면서 발을 들인 어둠의 세계는 강재와 맞지 않았다. 그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은 어둠의 공간, 혼돈의 현장이었는데 정작 강재의 마음은 그와 어울릴 수준만큼 혼탁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완전히 탁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욕설도 해보고 허세 어린 강짜도 부려봤지만, 백사장 모래가 바다에 부서지듯 강재의 거짓된 위장은 쉬이 부서져 버렸다.


아마 그때 즈음부터 일 것이다. 강재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은 마치 늘어난 부채처럼 이자를 붙였다. 강재는 흘러버린 시간이라는 매몰비용을 감당할 자신도, 거스를 용기나 배짱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삶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을 맡기는 것외에 다른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가속 페달을 밟거나 기어 변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천천히 앞으로 향하는 D버튼으로 고정된 자동차처럼 강재는 삶을 살아 낼 뿐이었다.


ⓒ 튜브엔터테인먼트, 강재는 뜻하지 않게 용식의 살인 사건에 엮인다

동갑내기지만 똘마니였던 강재와 달리 조직의 두목인 용식이와 보낸 그 밤 벌 살인 사건은 강재선택의 기로로 몰아붙였다.  용식을 들이받을 힘도, 그렇다고 멈춰 세울 용기도 없던 강재는, 그저 D버튼의 자동차처럼 느리지만 별 저항 없이 흘러가는대로 살인을 저지른 용식 대신 자수 하는 길을 택한다.  강재에게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기는 것이었으니까.


강재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낸다거나 이루는 것에 있어서는 더 이상의 기댓값이 없는 남자다. 오히려, 용식 대신 징역을 살면 고깃배 한 척을 해주겠다는 용식의 거래조건 훨씬 손에 잡히는 편익이었다. ‘위장 자수’는 강재가 ‘용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강재 자신의 문제’를 다시금 유예하기에 마땅한, 그럴듯한 변명이 되기도 했으니까.


ⓒ 튜브엔터테인먼트, 장백지의 출연은 그 자체로 놀라웠고, 관객으로 하여금 미모와 연기력에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삶은 생각한대로, 안정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1년 전 위장 결혼했던 강백란의 부고 소식은 강재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만든다.

강재는 조직 내에서 결이 맞는 동생 경수와 사망신고를 위해 백란이 살던 곳으로 떠난다. 그 여정 가운데서 뜻하지 않게 한 사람, 하얀 목련과도 같은 파이란의 삶과 마음을 느끼며 그 동안의 삶의 선택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코리아 픽처스,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는 유례없는 조폭 광풍에 휩싸인다

송해성 연출,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2001년 개봉작, 영화 <파이란>은 과장된 의리와 낮게 깔리는 목소리, 거품이 잔뜩 낀 진한 대사 등 수컷들의 내음으로 무장한 영화들이 범람하던 당시의 한국 영화 시장에서 매우 드문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우선, 조폭을 다루고 있었지만 앞에서 말한 조폭 영화의 특성은 파이란 속에서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주인공 강재가 보여주는 모습은 깡패로도, 그냥 민간인으로도 다 부족한 절름발이의 모습이었다. 삶의 어느 방면에서도 속 시원히 걸어가지 못하고 절룩거리는 강재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얼떨결에 도래한 새 시대(파이란은 21세기의 시작, 2001년 봄에 개봉했다)에 불안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비록 영화를 보는 이는 강재처럼 거친 욕을 하지도, 세면대에 소변을 처 발기지도, 고등학생에게 불법 포르노 테이프를 팔지 않았을지라도 강재를 보며 스스로만 알고 있는 깊고 은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마주하며 강재를 연민하게 된다.


당시 나날이 주가를 올리던 청춘스타 장백지의 등장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명이나 장국영 등의 해외스타들이 간혹 국내 매스컴에 출연했지만, 장백지처럼 떠오르는 신성이 한국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출연한 영화가 블록버스터도 팬시한 로맨스물도 아닌, 과장 조금 보태면 독립 영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기에 더더욱 장백지의 출연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녀의 출연은 단지 일회성 화제거리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분한 파이란이란 인물은 강재와는 또 다른 진동으로 관객들에게 가 닿았다. 장백지는 아름다운 외모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이국 땅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홀로 느끼는, 고아가 된 심정의 외롭고 처연한 파이란이라는 인물을 관객 각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명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고유의 특징은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연출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보통의 영화는 사랑에 대해서 다룰 때,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설렘과 권태의 감정을 갈등이나 개연성 있는 사건을 통해 전달한다. 하지만 파이란 속 남, 녀 주인공은 실질적 만남의 과정이 없다. 하물며 대사를 주고 받지도 않는다. 그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송신한다. 게다가 이 사랑은 여자 주인공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회신조차 되지 않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죽음을 매개로 남자 주인공의 마음에 전달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번도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못한 남자 주인공은 이미 죽은 여자 주인공에게 진한 연민을 느끼고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결심까지 하고 만다.

영화 파이란은 조폭 세계에서는 실패한, 재능 없는 깡패와 낯선 타국에서 살아내야 하는 외국인이 감내하는 지독하고 외로운 고단한 삶의 속성을 현실감 넘치는 때깔로 다루지만 사랑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고전적이고, 놀라울 만큼 순수한 사랑의 원형의 감정을 추구하고 있다.


ⓒ 튜브엔터테인먼트, 최민식과 장백지의 연기는 이미 경지에 올라있다

영화를 다시 보기를 몇 차례 하는 동안, 줄곧 궁금했다.

왜 그랬을까. 그토록 적나라하게 그렸던 현실감 넘치는 배경과 인물을 두고 감독은 왜 환상동화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숨겨 놓았을까.


그러다 문득, ‘어쩌면’이라는 세글자가 마음 속에 떠오른다.

어쩌면 감독은 믿고 싶었던 게 아닐런지.

그리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지.

사랑은, 사랑은 정녕 이래야 한다고.


‘순수함은 곧 비현실적 우매함’으로 조롱 받는 시대에서 ‘파이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개봉 당시 메가히트 경쟁작 덕에 흥행 참패를 맛봤던 영화는, 아이러니 하게도 개봉 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는 이의 마음에 변함없는 공명을 선사한다. 더불어 아직도 많은 이가 파이란을 일컬어 명작이라는 찬사를 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현실은 팍팍하고 불안과 염려는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 치 앞의 삶이 어찌 전개될지 모를 변화의 시간 앞에서 지구별 여행자들은 여전히 강재의 무력감과 파이란이 겪는 외로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파이란이 지금도 동일하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울림을 준다는 것은, ‘어쩌면’ 수 많은 강재와 백란들은 여전히 사랑에 답이 있다고 희망을 거는 것은 아닐까.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이상과 원색의 열정을, 덧없다 할지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의 가치를 살아오면서 애써 누르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어린 시절의 막연한 희망이 어느 날 이국 땅에서 느닷없이 실현되었던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헛된 바람이 별안간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짐짓 바라게 된다.

여전히 강재나 백란의 모습이 남아있기를 희망하며.





* 한 줄 읽기

우리가 외치는, 그리고 바라는 간절한 주문.

깡패, 이방인, 불법체류, 살인, 포주, 거친 욕설.... 모든 껍데기는 가라, 오직 사랑만 남고.




작가 '원우씨'와 함께 호우시절이라는 채널로 그 시절 반짝거렸던 때를 추억하며

영화를 리뷰하고 있는 조쿠나입니다.

이번 작품은 송해성 연출,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2001년작 '파이란'입니다.

영화에 대한 더욱 다양한 이야기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호우시절’과

유튜브 ‘영화발골채널 호우시절’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두 수다쟁이의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디오 클립 호우시절

유튜브 영화 발골 채널 호우시절

호우시절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의 숲이 전하는 역사의 '이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