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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Apr 04. 2022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부르는 희망의 찬가』

영화, 쇼생크탈출을 읽다

[활자로 만난 영화]

1995년, 초등학생이었던 내 일상조간신문을 읽으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거나 어떤 하나의 특출난 점이 있어서 이른바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잘했던 것은 끄물거리지 않고 아침이 되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별도로 깨워야 하는 과정 같은 건 없었다. 동이 트면 눈이 떠져 일어났고, 세수를 하고나면 신문을 읽었다. 아버지와 신문 보는 시간이 겹쳤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아버지가 본지부터 신문을 읽어 내렸다면, 나는 분리된 별지의 스포츠 지면부터 시작했으니까.


샅샅이 스포츠 면을 읽고 난 뒤에는 문화, 연예 섹션을 봤기에 그 쪽은 거의 읽지 않으시던 아버지와 겹칠 일은 없었다. 세개의 섹션을 다 보고 나면 그제서야 본지를 잡았다.  정치, 사회, 경제는 늘 헤드라인만 보고 휙 휙 넘겼다. 사설이나 칼럼을 읽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간혹 쳐다보는 시늉을 했지만 당최 이해하기 어려워 두어 문단을 읽고는 눈동자는 빠른 속도로 사선으로 훑어보며 문장의 마침표로 향했다.

비록 반쪽짜리 읽기였지만 신문 읽기 습관은 제법 유용했다. 경기나 공연, 영화를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매일 읽었던 스포츠와 문화 지면의 각종 소식들은 친구들에게 풍월을 뽐낼 수 있게 만들었다. 더불어 활자 이면의 저 먼 곳 어딘가의 세상에 대한 상상도 머릿속에서 그려보게 했다.


당시 문화면에는 주간 단위로 가장 많이 사랑받은 비디오 대여 순위도 실렸다. 실제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은 부모님께 허락받지 못했기에 매번 그림의 떡이었지만, 매주 빠짐없이 어떤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살펴보는 건 내게 퍽이나 중요한 사항이었다.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시절 신문 속 영화 대여 순위에서 큰 인기를 구가한 몇 개의 영화는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인간의 기억 형성과정은 오묘하고 신기하다.

오늘 소개할 영화, 쇼생크 탈출은 그 인기 차트에서 아주 오랫동안 수위권에 머물렀던 영화이다. 영화는 보지 못한 채, 그저 활자로 영화의 제목만 접하다 보니 도대체 무슨 탈출을 얼마나 대단하게 하길래 매주 빠지지 않고 인기 순위에 오르는지 사뭇 궁금했다. 쇼생크탈출이 과연 언제 인기 순위에서 탈출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소소한 그 시절의 관심사였다.

쇼생크 탈출에 대한 내 첫 번째 기억은 이와 같았다. 영화 자체의 재미나 영상미 혹은 배우에 대한 인상이 아닌, 갱지 위에 놓여있던 활자로 어린 내 마음 안에 조용히 찾아들었다. 마치 앤디 듀프레인이 처음 쇼생크에 나타난 그날처럼.

희망과 현실이 잇닿아 있을 때 비로소 삶은 풍성해진다. 앤디와 레드를 보며 관객은 풍요를 경험한다. ⓒ쇼생크탈출

[희망과 절망,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남자의 만남]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은 꽤나 잘 나갔던 금융인이었다. 영민한 머리와 잘생긴 외모, 안정된 직장으로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이 탄탄할 것만 같던 백인 청년의 삶은 자신의 아내, 그리고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트레이너가 살해당하면서 큰 풍파에 휩싸인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앤디는 결국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한 채,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쇼생크로 이송되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 그의 삶에 희망이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인다.


쇼생크 교도소에는 죄 없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재소자 각자의 말만 들어서는 거기에 죄인은 없다. 모두 다 억울하고, 결백하다. 한 명을 제외하고.

젊은 날 살인을 저지르고 쇼생크에 수감된 레드(모건 프리먼), 그만큼은 쇼생크의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모범적인 레드의 수감 생활은 매번 그를 가석방 심사 대상자에 오르게 한다.

영화의 도입만 보자면, 앤디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고, 레드는 절망의 터널에서 비로소 희망의 빛을 찾을 것 같지만 생은, 그리고 영화는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프랭크 대러본트 감독은 두 사람의 만남과 함께 두 사람의 상황과 상태도 같이 교차시켜 버린다. 앤디는 절망의 질곡 가운데에서도 교도소 안의 공기를 새롭게 바꾸며 희망을 끊임없이 발견하지만, 레드는 거듭된 가석방 승인 심사 부적격 판정에 따라 점점 더 현실적으로, 아니 현실에 파묻혀 작은 희망조차 단념해버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 말하는 레드를 바라보면, 어린 시절에는 자유로이 무한대의 꿈을 꾸다 조금씩 꿈을 미룬 채 현실과 타협하고는 어느덧 꿈이란 것을 잃은 채 살아가는 현실 속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제목으로 풀어보는 영화의 의미]

한글 제목 쇼생크 탈출의 영어 원제는 'The Shawshank Redemption'이다. 굳이 풀이를 해 보자면, ‘쇼생크 교도소에서 일어난 구원 이야기’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조간신문 속 활자로 영화를 상상하던 시간을 지나 수십 년 세월 동안 이 영화를 적어도 십여 번은 본 것 같다. 영화를 반복해서 돌려보면서 Redemption이 얼마나 탁월한 타이틀이었는지 느끼게 된다.

하여, 우리말 제목은 여러모로 아쉽다. 탈출이 반전이 될 수 있는 영화에서 제목에 대문짝만 하게 스포일러를 내놓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Redemption이라는 원제를 번역 과정에서 빼놓은 것은 중요한 실책으로 느껴진다.

대표적 명장면, 맥주 마시는 재소자들, 그리고 음악을 들려주는 DJ 앤디와 리스너들.......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 ⓒ쇼생크탈출

앤디는 절망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아득한 암흑의 터널 같은 현실 안에서도 끝끝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금융과 세법 지식을 바탕으로 간수들과 교도소장의 마음을 얻고, 접근 가능한 선에서 교도소 내의 재소자들의 삶의 영역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앤디의 구원은 단지 오물 덩어리 배수관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내 비로소 두 팔을 쫙 편 채 소리 지르는 마지막 탈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구원은 이미 쇼생크 내에서 재소자 동료들이 맛볼 수 없던 시원한 맥주를 맛 보여주고, 도서관을 마련하며,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리고 비록 자신이 살인의 물리적 격발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죄인임을 고백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앤디는 redemption의 대상이자 메신저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앤디가 뿌린 구원의 꽃씨는 글을 읽지 못하던 이들이 글을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눈을 뜨게 했고, 음악을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었다.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볼 수 있도록  그들 마음의 빗장도 서서히 풀게 한다. 레드 역시 가장 절망의 순간에서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Redemption이라는 단어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체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교도소에서의 물리적 탈출을 넘어서 한 인간의 구원, 나아가 한 공동체 속 개인의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원제에도 들어있는 중요한 대목이 번역 과정에서 누락된 일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흑백사진 같은 세월을 단 숨에 바로크로 바꾸는 희망의 찬가]

90년대는 내게 있어서 아주 짙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놀라게 된다. 30년 전 영화라 생각할 수 없는 치밀하고 세련된 각본은 스티븐 킹이라는 걸출한 원 작가의 역량이라 해도, 배우들의 열연과 지금과 견주어도 빠질 것 없는 촬영기법을 목도하면 장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열정과 재능에 감탄을 아낄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어떤 장면이든 ‘잠시 멈춤’을 해도 그 자체가 한 장의 포스터가 되는 빼어난 영상미는 관객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내내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영화를 보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마치 화려함과 색의 대비가 정점에 달했던 바로크 시대의 그림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면 '미알못' 이 부려보는 알량한 허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쇼생크에서 벌어진 구원 이야기는 우리를 단 숨에 90년대로, 아니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때로 순식간에 소환해버리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103작가


어린 시절 지면을 읽어보면서 헤아렸던 별점을 추억해보며, 감히 따라 해 보겠다.

이 영화는 단연코, ★★★★★



작가 '원우씨'와 함께 호우시절이라는 채널로 그 시절 반짝거렸던 때를 추억하며

영화를 리뷰하고 있는 조쿠나입니다.

이번 작품은 프랭크 대러본트 연출,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주연의 1995년작 '쇼생크탈출'입니다.

영화에 대한 더욱 다양한 이야기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호우시절’과 유튜브 ‘영화발골채널 호우시절’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두 수다쟁이의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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